태평양 서부 섬나라 팔라우의 수랑겔 휩스 대통령은 지난 12일 일본 후쿠시마를 방문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설비가 시험 운전을 시작한 가운데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및 수산물 가공 공장 등을 나흘에 걸쳐 시찰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팔라우를 비롯한 태평양 18국이 참여한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에서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핵 오염의 잠재적 위협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대통령이 직접 ‘현장 조사’에 나선 것이다.
반면 캘리포니아 등 서부 주(州)들이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될 태평양을 접하는 미국은 무심하리만큼 반응이 없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수석 부대변인이 지난달 기자 회견 때 “미국은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안전에 대해 어떤 우려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할) 내용이 없다”고 한 정도가 전부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한국에서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태평양을 접한 국가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한국·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 및 태평양의 섬나라들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오염수가 먼저 도착할 미국·캐나다 등 북미 국가 및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나라들은 별다른 대응이 보이지 않는다.
후쿠시마는 일본 동부에 있기 때문에 오염수는 북동쪽으로 향하는 구로시오 해류를 타고 북미에 먼저 도착하게 된다. 이후 미 서부에서 남하해 북적도 해류를 타고 서쪽으로 흘러 4~5년 후에야 아시아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북미 지역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셈이지만 일부 환경 단체를 제외하곤 논란이 미미한 상황이다. 1993년 러시아가 동해 인근에 900t의 핵 폐기물을 투기했을 당시 “민감한 해양 환경 문제에 대해 리더십을 발휘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며 비난했던 것과 상반된다.
미국 등은 “엄격한 처리 절차를 거친 것으로 안다”며 대체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 결과를 신뢰하겠다는 입장이다. IAEA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 “방사성 핵종(核種) 등 위험 물질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검출되지 않았다”는 중간 보고서를 지난 1일 냈다. 아울러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에서도 논란은 거의 없다.
방류의 영향을 가장 늦게 받게 될 적도 부근 태평양 국가들은 오염수가 미래에 환경 문제를 일으킬 경우 주요 산업인 관광·어업에 끼칠 악영향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3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아시아 안보 회의 때 피지 외무장관이 “일본이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말한다면 왜 일본에 두지 않느냐. 우리는 상당히 걱정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미국령 북마리아나 제도(사이판·티니안·로타 등) 정치인들이 지난 3일 일본 국제법률가협회 토론회에 참석해 “우리는 인구는 적지만 협력한다면 (방류) 계획을 멈출 수 있다”고 압박하는 식이다.
중화권 국가 중에도 방류를 견제하는 쪽이 많다. 중국은 후쿠시마 원전 방류 계획이 위험해서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주로 관영 매체의 기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대만은 지난해 3·11월에 이어 지난 12일 후쿠시마에 시찰단을 파견하며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여온 태평양의 섬나라 등에서도 현장 방문 등 검증 절차 이후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릴 조짐이 보이고 있다. 후쿠시마를 방문했던 휩스 팔라우 대통령은 지난 14일 도쿄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안전 확보를 위한 일본의 진지한 노력을 알겠다”고 했다. 대만 원자력위원회(AEC)는 지난 1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배출되는 (방사성 물질) 삼중수소를 함유한 폐수가 약 4년 안에 대만 영해에 도달한다고 예상되지만 농도가 검출 한계 이하 수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안전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배출될 오염수에 남을 위험 물질이 적기도 하지만 설령 유해하다고 해도 해류를 거쳐 수년간 희석된 오염수가 태평양 섬이나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