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현지 시각) 북한 남침 직후 열린 제473회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장면 주미대사가 UN 차원의 대응을 호소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UN Audiovisual Library

발발한 지 73년을 맞은 6·25전쟁은 유엔이 처음으로 ‘유엔군’이라는 이름의 다국적군을 꾸려 유엔기(旗)를 사용하며 참여한 전쟁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을 하자 유엔은 뉴욕 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UNSC·안보리)를 긴급 소집했고 이후 ‘안보리결의안 82호’ 등 결의를 통해 한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며 힘을 실어 주었다. 당시 미국이 주도한 유엔의 도움으로 한국은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켜 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올해 한국은 192개 회원국 중 180개국의 찬성표를 받으며 사상 세 번째로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는 등 국제 외교 무대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유엔은 어떻게 전쟁 발발 하루 만에 규탄 결의안을 냈을까. 그 결정적 순간을 5문답으로 풀었다.

◇Q1. 유엔 참전 물꼬튼 ‘결의안 82호’는 무슨 내용인가

전쟁이 발발하자 이 소식은 바로 미 정부에 보고 됐다.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주말 휴가를 보내기 위해 미국 중서부 미주리주에 있었던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밤 10시가 다 됐을 무렵 전화로 북한의 남침 사실을 보고했다. 일요일이었던 1950년 6월 25일 오후 2시(현지 시각) 고팔라 메논(Menon) 인도 대표 주재 하에 ‘한국 침략에 대한 고발(Complaint of aggression upon the Republic of Korea)’라는 의제를 두고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가 열렸고 결의안 제 82호가 채택됐다. 이 결의안에서 유엔은 북한의 남침은 평화를 파기한 것이며 모든 적대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북한이 군대를 38선 이북으로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6·25 전쟁과 관련한 유엔 최초 조치였다.

하지만 북한은 철수하지 않았다. 유엔은 회원국들이 국제평화와 안전의 회복을 위해 한국에게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 83호와 한국에 군사적 지원을 하도록 미국 지휘 하에 연합사령부가 운영되게 하는 결의안 84호를 잇따라 통과시켰다.

◇Q2. 상임 이사국 소련도 ‘결의안 82호’에 참석했나

안보리는 상임 이사국 중 한 나라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건이 통과되지 않는다. 전쟁 발발 당시 상임 이사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당시) 소련, 중화민국(대만)이었다. 비상임 이사국은 유고슬라비아, 이집트, 인도 등 6개 나라였다. 총 11개국 중 유고슬라비아는 “북한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며 기권했다. 소련은 아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기권’ 처리 됐다. ‘기권’은 ‘거부’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결의안 82호는 채택됐다. 당시 소련이 불참한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이 참전하게 해 전쟁으로 힘을 빼놓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등 여러 설이 있다.

1950년 6월 25일(현지 시각) 북한 남침 직후 열린 제473회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장면 주미대사가 UN 차원의 대응을 호소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UN Audiovisual Library

◇Q3. 결의안 통과 때 현장에 한국측도 있었나

당시 한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엔은 안보리 이사국들의 동의 하에 이사회 의장이 한국을 초청했다. 워싱턴DC에 있던 장면 당시 주미대사가 한국 대표 자격으로 안보리에 참석했다. 안보리가 긴급히 잡혀 시간이 촉박했지만 그는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로 날아갔다. 장면 대사는 약 4분간 영어로 북한이 남침했다고 밝히고 “우리의 생존은 유엔에 달렸다”며 국제 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장 대사의 발언이 표결에 참여한 국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긴박한 모습을 담은 역사적 동영상을 유엔은 온라인 시청각 자료실(UN Audiovisual Library)에 올려 두었다.

◇Q4. 유엔이 6·25 때처럼 참전한 전쟁이 또 있나

냉전이 종식된 후 유엔은 치안유지, 전후복구 등을 주로 담당하는 평화유지군(PKO)의 활동만으로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유엔 승인 다국적군’을 설치하기로 했다. 처음 다국적군이 참여한 전쟁은 1990년 걸프전이다. ‘유엔 승인 다국적군’은 현재까지 10번 이상 설치됐다.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아 다국적군을 꾸려 전쟁에 참여했다는 점은 6·25전쟁 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엄밀히 말하면 다국적군이 유엔기(旗)를 사용하며 말그대로 ‘유엔군’의 이름으로 싸운 전쟁은 6·25 뿐이었다.

◇Q5. 6·25에 참전한 유엔군은 해체됐나

아니다. 1953년 7월 남북이 정전 협정을 맺은 뒤에도 유엔사는 해체되지 않았다. 유엔사는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에 지휘권을 넘겼고 현재는 정전협정 관련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을 동시에 맡고 있다. 한국, 미국, 호주, 벨기에, 캐나다 등 18개국이 회원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