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 와그너 그룹 수장이 한 연회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가운데)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용병 와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 반란’을 선언하면서 러시아 국방장관 등을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한때 ‘푸틴의 요리사’로도 불렸던 그가 러시아 수뇌부와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4일(현지 시각)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에 주둔해있던 와그너 그룹 용병들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로 진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끝까지 갈 준비가 됐다”며 “우리의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수뇌부의 신임을 받아 와그너 그룹을 이끌고 우크라이나 전쟁 최전선에서 싸워온 그가 ‘반란’을 선언한 것이다.

프리고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어온 인물이다. 푸틴의 고향이기도 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레닌그라드) 출신으로, 1981년 강도 등 범죄로 9년 간 복역한 후 고향에서 요식업을 하던 사업가였다. 평범해보였던 그의 인생은 2001년부터 푸틴이 그의 레스토랑에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180도 바뀌었다. NYT는 “빛나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프리고진은 때때로 빈 접시들을 치우기도 하면서 (푸틴의)근처를 맴돌았다”고 했다. 이후 그는 수도 모스크바까지 진출, 크렘린궁에서 열리는 각종 만찬과 연회를 도맡으면서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프리고진이 본격적으로 푸틴의 신임을 얻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 용병기업 ‘와그너 그룹’을 설립하면서다. 그 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분리주의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군간 충돌이 벌어졌을 때 러시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했다. 이후 와그너 그룹은 ‘푸틴의 살인 용병’으로 불리며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러시아군 대신 개입하면서 세력을 키워왔다.

러시아 용병기업 와그너그룹을 이끌고 있는 예브게니 프리고진. /AP 연합뉴스

지난해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프리고진과 와그너 그룹은 푸틴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왔다. 와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 최전선에서 싸워왔고, 최근까지 최대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를 장악했다. 일각에서는 “전쟁을 계기로 프리고진이 푸틴의 후계자로 올라서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올 초부터 러시아 수뇌부와 프리고진의 관계에 이상기류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프리고진은 여러 차례 “러시아를 위해 싸우는데도 탄약 등 지원이 부족하다” “탄약을 보충해주지 않을 경우 바흐무트에서 철수하겠다”며 러시아 군부 인사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또 “러시아 군 수뇌부가 바흐무트에서 바그너 전투기의 탄약과 보급품을 고의적으로 보류해 전력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다른 곳에서는 러시아 군이 연이은 실패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 10일 모든 비정규군에 국방부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했으나, 오히려 갈등에 불을 붙인 꼴이 됐다. 재계약을 거부한 프리고진은 이후 23일 “러시아 군부가 우리의 후방 캠프를 폭격했고, 많은 와그너 동지들이 죽었다”고 보복을 선언, 러시아 본토로 진격했다.

민간용병조직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반란을 선언하면서, 러시아 당국이 모스크바 주요 시설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진 이후 트위터에 '모스크바 주변에 장갑차가 배치됐다'는 사진 등이 올라왔다./트위터

러시아 수뇌부는 즉각 프리고진을 ‘무장반란 주동자’로 명명, 체포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산하 국가반테러위원회는 “프리고진의 발언은 러시아 군대에 대한 뒤통수”라며 “러시아에서 무력 충돌을 조장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고르 크라시노프 러시아 검찰총장은 “무장 반란은 최대 징역 20년에 처해질 수 있다”고 했다.

프리고진의 반란은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전쟁의 판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전쟁연구소는 “러시아 군부를 겨냥한 프리고진의 반란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와그너 그룹의 (군부에 대한)공격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전력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