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지난달 초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부녀(父女) 용의자. 오른쪽은 피해자와 범행 현장인 모텔에 함께 들어가 홀로 나온 다무라 루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고 왼쪽은 정신과 의사이자 경찰에 함께 검거된 아버지 다무라 오사무. /테레비아사히 캡처

여름철 휴가지로 인기가 많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명확한 동기 등이 드러나지 않아 일본 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지난달 2일 홋카이도 삿포로시 유흥가 스스키노의 한 호텔에서 벌어진 사건은 목이 사라진 시체, 부녀(父女)의 공조 범행, 이중인격인 용의자, 가짜 트랜스젠더였던 피해자 같은 반전 요소가 잇달아 공개되며 충격이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다. 마치 일본 유명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추리소설 속 사건이 현실에서 벌어진 듯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경찰은 이 끔찍한 범죄의 진짜 동기를 조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건은 지난달 초 삿포로의 번화가 스스키노에 있는 한 호텔 욕실에서 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공개됐다. 이 남성은 전라(全裸)였고 머리가 사라진 채였다. 일본 경찰은 방범 카메라에서 전날 오후 10시 40분에 이 남성과 같이 호텔에 들어온 인물이 이날 오전 2시에 홀로 가방을 끌고 나가는 장면을 확인했다. 흰옷을 입고 호텔 방에 들어간 범인은 나갈 때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 쓴 차림이었다. 객실에서 범인의 지문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방범 카메라를 추적해 용의자를 검거했다. 29세 여성 다무라 루나와 아버지인 다무라 오사무(59), 어머니인 다무라 히로코(60) 등 일가족 3명이다. 이들의 집을 덮쳤을 땐 2층 욕실에 피해자의 잘린 목이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 초 홋카이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희생자로 알려진 인물의 생전 사진. 사건 당일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뉴스포스트세븐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한 범죄의 재구성은 이렇다. 유력한 용의자인 루나는 범행 후 목만 잘라서 가방에 넣고 현장을 떠났다. 살해당한 남성은 스스키노 번화가에서 ‘도모짱(’짱’은 친한 사람을 부르는 애칭)’으로 불리는 여장 남자다. 살해 당일도 한 디스코 이벤트에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은색 의상을 입고 여성의 모습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도모짱의 실체는 사이비 트랜스젠더였다고 한다. 한 지인은 “여장만 했지 사실은 여자를 밝히는 남자였다. 술 취한 여성을 성추행하는 등 말썽이 잦았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기 위한 위장술로 ‘여장’을 활용한 셈이다.

도모짱은 지난 5월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루나를 만났다. 강제 성관계를 하고 동영상을 찍어 협박했다. 폭행도 있었다고 알려졌다. 루나는 경찰 조사에서 협박 때문이라고 동기를 밝히지는 않고, 자신이 이중인격으로 불리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내 안에는 몇 명이나 되는 인격이 있다. 그중 한 명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외동딸 루나를 끔찍하게 사랑한 아버지 오사무는 꽤 명망 있는 정신과 의사였다. 과로사한 유족의 정신 치료를 돕거나, 해외 파병 자위대의 가족을 지원하는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중년 밴드 모임에선 기타를 쳤다. 한 동네 주민은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두 달은 집 근처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급히 먹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도모짱이 딸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켰다는 추정이 나온다.

지난달 초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일어난 엽기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다무라 루나와 부모가 함께 살던 주택의 모습. 이들은 피해자를 살해한 후 집에 목을 보관하다가 검거됐다. /STV뉴스 홋카이도

경찰 조사 결과 평범한 ‘아저씨’였던 오사무는 사건 직전에 딸과 함께 톱·가방을 샀다. 도모짱과 만나는 장소까지 자동차로 딸을 데려다줬고, 끔찍한 범행을 한 딸과 문제의 가방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버킬(과도한 살인)’을 한 심리나 신체의 일부를 굳이 집까지 가져온 이유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살인 방조로 검거된 어머니 히로코는 “진짜로 딸이 살인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녀가 희대의 엽기 범죄를 저지른 배경 등에 대한 ‘마지막 반전’은 조만간 열릴 재판장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루나가 주장대로 이중인격일 경우엔 치료 시설 입원이란 판결이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버지·어머니가 딸의 범행 계획을 몰랐다고 입증한다면 ‘스스키노 살인 사건’으로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고 빠져나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