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이민, 반이슬람 정서가 확산하는 유럽에서 강경 우파, 극우 정당의 입지가 계속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위스, 핀란드 등에 이어 이번에는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 성향 정당이 1위를 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중동·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에 대한 유럽인들의 불만이 급증하는 가운데, 지난달 7일 이스라엘 민간인을 1300여 명을 학살·납치한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테러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23일(현지 시각) 일간 텔레흐라프 등 네덜란드 매체들은 전날 치러진 총선 개표 결과 극우 성향 ‘자유를 위한 정당(PVV·자유당)’이 총 150석 하원 의석 중 37석(24.7%)을 차지하면서 원내 최대 정당으로 오르게 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기존 의석(17석)의 2배가 넘는 대약진이다. 2위인 녹색·노동당 연합(GL/PvdA)은 25석에 그치면서 PVV와 의석 격차가 12석에 달했다. 중도 우파 자유민주당(VVD)은 24석으로 3위에 머물렀다.
실용주의 중도 정당들이 강세를 보여온 네덜란드에서 극우 성향 정당이 원내 1당이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프랑스 르피가로와 독일 디벨트 등 보수 성향 유럽 언론들은 “중부 유럽과 북유럽을 휩쓴 강경 우파 바람이 네덜란드까지 밀어닥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디벨트 등은 특히 “지난달 7일 하마스의 테러 참사와 뒤이은 전쟁의 충격이 네덜란드 내 반이슬람 정서를 강화했을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암스테르담과 헤이그에서 열린 이민자들의 친팔레스타인 시위엔 “테러 집단 옹호”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자유당은 ‘네덜란드판 도널드 트럼프’라고도 불리는 헤이르트 빌더르스(60)가 2006년 창당했다. 그는 근면과 절약, 청렴 등을 강조하는 네덜란드 전통문화와 정체성을 중동·아프리카계 이민 급증과 이들의 종교(이슬람) 및 삶의 방식이 파괴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이슬람계 난민의 망명 허용을 반대하고, 네덜란드 내 이슬람 사원(모스크)을 모두 폐쇄하며, 이슬람 경전(코란)도 막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본래 자유민주당에 몸담고 있다가 2004년 자유민주당이 튀르키예의 유럽연합(EU) 가입에 긍정적 입장으로 돌아서자 이에 반발해 탈당한 전력도 있다. 네덜란드의 EU 탈퇴, 이른바 ‘넥시트(Nexit)’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등 EU에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EU의 온정주의적 난민 정책으로 테러와 범죄가 빈발하고 노숙자가 넘치는 유럽의 ‘사회적 위기’가 초래됐다는 이유다. 유럽 내 다른 극우 성향 정당들과 궤를 같이하는 주장이다.
빌더르스는 22일 밤 “우리의 승리는 네덜란드를 네덜란드인에게 돌려달라는 유권자의 뜻”이라며 “망명과 이민의 쓰나미는 이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텔레흐라프는 “다만 PVV가 원내 최대 정당이라는 입지에도 연립정권 수립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중도·좌파 정당들이 ‘극우’로 낙인찍힌 PVV와 손잡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유럽 내 극우 성향 정당의 약진은 더 이상 ‘이변’이나 ‘돌풍’이 아닌 보편적 현상이 되어가는 추세다. 앞서 지난달 스위스 총선에선 강경 우파인 스위스국민당(SVP)이 62석을 얻어 압승을 거뒀다. 또 지난 4월 핀란드 총선에서도 극우 성향 핀란드인당이 46석을 얻으면서 2당으로 약진, 연립정권을 세웠다. 독일에선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지난 9월 여론조사에서 21% 지지율을 보이며 집권당인 사회민주당(SPD)을 앞질렀다.
이탈리아에선 지난해 10월 극우 성향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총선에서 승리,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집권했다. 스웨덴도 작년 9월 총선에서 극우 성향 스웨덴민주당(SD)이 73석으로 2당에 오르며 우파 연정에 참여했다. SD는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였던 스웨덴이 난민과 이민자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마약과 총기 살인이 들끓는 곳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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