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를 위해 숲에서 바다로 향하는 크리스마스섬 홍게들. 도로에 차의 진입을 막는다는 내용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호주 국립공원

호주 크리스마스섬 홍게의 산란철 대이동이 2개월이나 지연됐다. 비정상적으로 건조한 날씨에 홍게들이 이동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9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호주 크리스마스섬 홍게들은 이달 말에 들어서야 짝짓기를 위한 대이동을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섬 홍게 대이동은 통상 우기가 시작되는 11월 전후로 시작해 늦어도 1월에는 끝나는데, 약 2개월이나 늦춰진 것이다. 1980년대 홍게 대이동 관측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원인으로는 극한의 건조한 날씨가 꼽힌다. 호주 국립공원의 멸종위기 프로그램 관리자 브렌든 티어난은 “지난 12개월 동안 평균 강수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비가 내렸다”며 “이는 섬을 절망적일 정도로 건조한, 먼지만으로 뒤덮인 곳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고 했다. 이어 “이 같은 현상은 게들이 이동하는 것을 막았다”고도 했다.

바다 근처 바위에 몰려든 홍게. /호주 국립공원
새끼 홍게. /호주 국립공원

한편 크리스마스섬 홍게 대이동은 호주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다. 약 1억마리의 홍게가 한번에 이동하면서 크리스마스섬 도로와 대지를 붉게 물들이는 광경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섬 주민들에게는 일종의 주요 행사 중 하나다. 대이동 시즌이 되면 주민들은 ‘절대 훼방하지 말라’는 취지의 문구가 적힌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홍게를 에스코트한다. 홍게가 지나는 도로에는 자동차도 진입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섬 홍게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종으로, 호주법에 의해 보호된다.

크리스마스섬 홍게는 숲에 터를 잡고 생활하지만, 산란철에는 바닷가로 이동한다. 수컷들이 암컷보다 먼저 바닷가에 도착해 보금자리로 쓸 굴을 마련한 뒤 이곳에서 짝짓기한다. 거사가 끝나면 수컷은 먼저 바닷가를 떠나 원래 있던 숲으로 향하고, 암컷 홀로 남아 산란한다. 이후 암컷은 낳은 알들을 품으며 굴에서 약 2주간 생활하다 밀물 시간에 맞춰 알을 날려 보낸 뒤 숲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