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0일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위해 제다에 도착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가자지구 무장 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에서 굳건하게 이스라엘 편을 들어온 미국의 태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이스라엘을 계속 지지·후원하며 동맹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외교적으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 속출로 거세진 여론 악화에 대응, 휴전 압박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11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중동계 미국인들의 지지율 하락으로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차마 이스라엘에 등을 돌릴 수 없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민’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은 20일 현지 매체 알하다스TV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 석방과 연계된 즉각적 휴전 촉구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달에도 안보리에 휴전 촉구 결의안을 냈다. 하지만 당시는 알제리 등 친팔레스타인 국가들이 주도한 휴전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그 대안 성격으로 내놨던 것이다.

이번 결의안은 최근 미국과 카타르, 이집트가 중재해 내놓은 ‘이스라엘 인질 40명에 대한 팔레스타인 인질 교환과 6주간의 임시 휴전’ 협상안을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즉각 수용하라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블링컨은 결의안의 배경에 대해 “우리(중재국들)는 이스라엘과 함께 강력한 (휴전) 제안을 내놓으려 노력했으나, 하마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요구를 들고 돌아왔다”며 “하마스가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팔레스타인인)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합의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하마스는 그동안 협상 조건으로 휴전이 영구적이어야 하며, 이스라엘군이 즉각 가자지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이 강한 거부 입장을 보이자, 최근 인질 교환과 동시에 이스라엘군이 단계적 철수를 하고, 최종적으로 영구 휴전 날짜에 합의하자는 변형된 제안을 내놨다. 하지만 휴전 협상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미국을 비롯한 중재국들은 “일단 휴전부터 하자”며 하마스와 이스라엘 양측을 계속 압박하는 중이다.

국제 여론은 이스라엘에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와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 등은 최근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굶주림을 무기로 삼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마스가 통제하는 가자 보건부는 “가자지구 내 사망자가 3만2000여 명에 달하고, 이스라엘군이 구호품을 얻기 위해 몰려드는 피란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런 상황에도 “하마스의 마지막 숨통을 끊겠다”며 140만여 명의 피란민이 몰려 있는 가자 최남단 라파에 대한 공격 준비를 착착 진행 중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라파 군사 작전 계획에 이어 조만간 민간인 대피 계획이 승인될 것”이라며 “미국에 특사를 보내 라파 공격 계획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이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며 작전 강행에 반대하는 한편 ‘일단 휴전’을 요구해 왔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미국 정부 고위 관리를 인용해 “이스라엘이 미국이 공급한 무기를 가자지구 안에서 사용하는 과정에서 인도주의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겠다는 서면 보증서를 전해왔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에 최소 수천 발의 폭탄과 각종 첨단 무기를 제공했고, 이들 상당수가 가자지구 공격에 쓰였다. 이에 중동계 미국 국민들은 “바이든 정부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돕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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