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현지시각)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거리에 놓인 시신 주변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뉴스1

길거리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다들 쳐다만 볼 뿐, 가던 길을 재촉한다. 성폭행도 만연하다. 여성들은 길거리에서 납치당해 성관계를 강요당하고, 거부하면 살해 위협을 받는다.

중미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의 안전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외교부는 8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철수를 희망한 한국인 11명이 헬기를 타고 인접국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철수했다고 밝혔다.

아이티에서 철수한 한국인은 13명으로 늘었다. 앞서 지난달 26일 철수를 희망한 2명을 헬기를 통해 같은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아이티에는 아직 한국인 60명이 남아있다. 대부분 오래전 수도 포르토프랭스와 북부 카라콜 지역에 터전을 잡은 선교사와 기업가로 알려졌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갱단에 의해 불탄 자동차 주변을 시민들이 살펴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주 최빈국으로 꼽히는 아이티에서는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이후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최근에는 갱단의 폭력 사태가 심해지면서 국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3월 초부터 국제공항이 폐쇄되어 외국인들은 헬기를 통해서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지난달 12일에는 아이티 총리가 갱단 두목의 협박을 받고 해외에서 사임을 발표했다. 중무장한 갱단은 학교, 대학, 병원, 은행 등을 거의 매일 공격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유엔의 아이티 인권 최고 전문가 윌리엄 오닐은 영국 가디언에 “종말과 같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엔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아이티에서 1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작년 한 해 동안 4450명이 사망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다. 또 5만3000명 이상이 최근 몇 주 동안 수도를 탈출했다. 오닐은 “이곳에는 사실상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했다.

아이티 갱단이 공개한 자신들의 홍보 동영상 중 일부. /유튜브 jhon prodz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지난달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갱단이 인질을 붙잡아 성폭행하고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속출하지만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은 통근 혹은 통학길에 대낮에도 무장 갱단에게 공격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일부 성폭행 피해자들은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살해됐다.

갱단은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해 마을 입구마다 ‘검문소’를 설치했다. 물이나 전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검문소에 비공식적인 ‘세금’을 내야 한다.

2일(현지시각)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시민들이 최루탄을 피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오닐은 갱단의 무장 반란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납치, 마약 밀매, 총기를 이용한 갈취 등 갱단이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불법 활동을 위해서는 정부의 부재가 필수적이었다는 것이다.

오닐은 “갱단은 아이티 사회를 좋게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없다”며 “콜롬비아의 무장혁명군과는 다르다”고 했다. 이어 “아이티 갱단은 국가를 장악하고 이를 운영할 이데올로기가 없다”며 “그들은 매우 약한 정부를 유지해 자신들의 통제권을 유지하기를 원할 뿐”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신속대응팀을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파견해 헬기로 철수한 우리 국민들을 대상으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아이티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다양한 안전 조치를 계속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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