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과 일론 머스크(‘스페이스X’ 창업자)의 우주선이 열어젖힌 새로운 우주 시대를 보라. 인간은 역사 속 재난을 반복해서 만들지만 그 가운데 강대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인류다.”
중국 SF(공상과학) 소설가 류츠신(劉慈欣·61)을 16일 두 시간에 걸쳐 전화 인터뷰했다. 그는 현시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인 소설가 중 하나다. 그의 대표작 ‘삼체(三體·2006~2010년)’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미국 드라마는 지난달 2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후 세계 시청 순위 1위(TV 부문)에 올랐다. 앞서 중국 CCTV는 지난해 1월 중국판 ‘삼체(중국어 발음 ‘싼티’)’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이 역시 크게 흥행했다. 류츠신의 소설엔 중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언급되는데 삼체에는 문화혁명(문혁·1966~1976년 중국 극좌사회운동)이 나온다. 문혁을 겪으며 인간의 자정(自淨) 능력에 실망한 중국 과학자가 외계로 메시지를 보낸 이후 벌어지는 지구와 외계 문명의 대결을 그렸다. 책은 2014년 미국에서 번역 출간돼 ‘버락 오바마(전 대통령)가 휴가 때 읽는 소설’로 유명해졌고, 전 세계 판매량은 영어권 300만권을 포함해 3000만 권이 넘는다. 지금까지 번역 출간된 중국의 문학 작품 총 판매량을 뛰어넘는(가디언) 기록이다.
◇ “히트 칠 줄 몰랐고 지금도 이유 모른다”
-‘삼체’가 이 정도로 성공할 줄 알았나.
“의외다. 출판사가 나보다 더 놀랐다. 이 책은 순수 SF 소설로 출간됐고, 겨냥한 독자층도 중국의 SF 애호가들 정도였다. 지금도 성공 원인은 못 찾았다.”
-당신의 소설이 현실을 빗댄 우화, 혹은 예언이라 하는 이들도 있다. (예를 들어 ‘삼체’ 2부 ‘흑암의 숲’에 대해선 미·중 갈등을 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니다. ‘흑암의 숲’의 경우 인간과 외계인의 대결을 그렸을 뿐이다. 대항만 있고 협력은 없다. 그러나 실제 인간 사회와 미·중 사이엔 경쟁과 대항 외에도 협력이 있다. 독자 해석은 자유지만, 나는 SF 소설을 통해 은유하지 않는다. 내 작품은 (정치 메시지를 담은 SF 소설) ‘1984′(조지 오웰)가 아니다.”
-‘삼체’의 애독자 오바마가 2017년 베이징에 왔을 때 만났던데.
“오바마와 얼굴을 한 번 봤을 뿐이고,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새 책이 나오면 보내달라 했지만, 연락처를 주지 않았으니 보낼 수도 없지 않나.”
◇ “중국 역사보다 서방 역사를 더 잘 안다”
-‘삼체’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물리학이 말하는 삼체 문제를 설명한 글을 읽고 이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삼체 문제는 질량을 가진 세 개의 점만으로 이뤄진 우주가 있다고 가정한다. 단순한 우주인데 이 점들이 각자의 인력(引力)으로 당기며 움직일 경우 현재의 물리학이나 수학으론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이 세 점이 항성이고 문명이라면’이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소설을 썼다.”
-작품엔 물리학적 요소가 많은데, 물리학은 어떻게 통달했나.
“솔직히 물리학을 진정으로 이해하진 못한다. 좋아할 뿐이다. 전문가들이 봤을 때 높은 수준이 아니다.” (류츠신은 1985년에 화베이 수리수전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중국이 첫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1970년부터 천문학에 매료됐고, 대학에선 수력 발전을 전공하며 물리학 지식을 쌓아갔다고 알려졌다.)
-문학적 재능은 타고났다고 생각하나.
“보통이다. 문학을 사랑해서 소설을 쓴 것이 아니고, 과학·기술을 사랑하기에 SF 소설을 쓴다. 체계적인 문학 훈련을 받거나 문학 작품을 다독하지도 않았다.”
-영향받은 책이 있다면.
“SF 소설로는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꼽을 수 있다. 문학 전체 중엔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다. 광활한 시각으로 역사의 장관을 묘사했다. 대지(大地)의 무게감이 내 창작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하나의 시대를 묘사하는 넓은 시야가 있는 소설이다. 오늘날 많은 작가는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에 몰두하고, 심지어 개인의 희로애락(喜怒哀樂)만 다룬다. 거대 서사를 펼칠 능력이 없는, 시야가 좁은데 근시다.”
-시야를 넓히기 위해 무엇을 하나.
“깊이 있는 역사·과학서를 읽는다. 그리고 과학과 관계가 밀접한 서방 역사를 중국 역사에 비해 많이 읽고, 그래서 더 잘 안다.”
◇ “지난 30년 간 지구의 평화는 비정상”
-인류가 ‘삼체’와 같은, 생존의 위협과 맞닥뜨리는 날이 올까.
“나는 과거에 비해 생존 위기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흑사병이 유럽 인구 3분의 1을 앗아갔고, 세계 대전이 두 번이나 일어났고, 핵위협이 (지금보다) 실질적인 때도 있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인류는 더 강대해지고 있고 위험은 작아지는 추세다. 코로나 사태나 (러시아·우크라이나 등의) 전쟁 등을 고려해도 지금은 인류 역사 전체로 봤을 때는 ‘새로운 혼란 발생기’가 아니라 ‘정상[常態] 회복기’에 가깝다.”
-지구와 우주를 변화시키는 궁극적인 힘은 무엇일까.
“오직 한 가지 힘이다. 과학기술. 나는 인공지능(AI)이 세계를 바꿀 핵심 기술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다만 현재의 AI는 데이터에 기반해 확률에 의존할 뿐이고, 논리적 추론에 기대 판단하는 수준엔 이르지 못했다. 지금의 수준으론 SF 소설에 나오는 인간 통치 능력을 갖출 수 없다. 나는 AI가 영원히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할 수 있다고도 본다.”
-AI가 미래에 미칠 영향을 상상한다면.
“당장 직면한 영향은 사람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에 대비해) 전통적인 분배 방식에 중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 증기기관과 자동화 기계가 나타났을 때는 인간을 다른 일자리로 밀어내는 정도라면, 지금은 일할 기회 자체를 박탈한다. 분배 개혁을 하지 않으면 ‘러다이트 운동’(기계 반대 운동)의 1만배 수준의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공동부유(다 함께 잘 살자)’ 등 중국의 최근 정책이 이런 변화에 대한 대비책이라고 보나.
“그건 아니다. 중국 정부는 빈곤한 지역과 발전된 지역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뿐이다.”
◇ “문화혁명은 참회가 없었다”
‘삼체’에선 문혁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첫 장면이 문혁 당시 제자와 아내에게 버림받고 살해당하는 천체물리학자의 모습을 조명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중국인들이 “중국에 망신을 주고 있다”고 분노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혁을 중요하게 다룬 이유는.
“이야기 전개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줄거리의 진행상 현대의 중국인이 인간성에 대해 철저하게 실망하는 내용이 필요한데, 중국 현대사에서 그럴 만한 사건이 문혁 외에 떠오르지 않았다. 문혁은 참여한 이들이 대부분 참회하지 않았다.(그 부분이 특히 실망스럽다는 뜻.)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넷플릭스 ‘삼체’에 만족·불만족한 부분은.
“등장인물을 대거 추가하고 관계를 풍부하게 만든 것은 좋다. 그런데 그 등장인물들이 왜 서로 다 아는 사이인가. 그건 이상하더라. 외계인에 대한 저항은 전 인류의 공동 대업인데, 마치 한 학급의 친구들이 차출돼 외계인과 싸우는 것처럼 연출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제작에 얼마나 참여했나.
“고문 수준으로 참여했고 의견도 냈다. 다만 미국 드라마 특징과 상업성을 살려야 하니 내 의견이 다 수용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문혁 박해 장면이 중국 소셜미디어 등에서 비판받았는데.
“원작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정상적이다. 오히려 소설보다 적게 묘사되지 않았는가?(영어 등 번역판 소설에선 문혁 장면이 앞쪽에 상세히 묘사되는 반면, 중국어판에선 다소 뒤쪽으로 이동해 있고 분량도 적은 편이다.) 중국사회에서 문혁은 여전히 어느 정도의 민감성이 있다. 그러나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두 편이 문혁을 배경으로 삼았을 정도로 소재로 삼은 사례가 전혀 없지는 않다.”
-현재의 중국을 후일 당신의 책에선 어떻게 묘사할까.
“비행을 시작하는, 굴기의 시기. 지난 세기 초 미국의 모습과 비슷하다. 중국은 강력한 ‘미래감(未來感·미래 지향적인 감각)’이 있는 나라다.”
-중국과 세계는 지금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
“AI 발전을 통해 인류는 고유의 것이라고 믿은 지능, 지식에 대한 이해가 더는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중국의 변화라면, 중국이 자신을 전(全) 인류의 일원으로 보기 시작했다. 시야가 인류 전체를 향하기 시작하며 넓어졌다. 앞으로 중국은 더 개방되고 연결되어 결국 세계와 융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우주 속에서 아주 작은 인간, 그걸 보여주고 싶다”
류츠신은 1980년대부터 산시성 화력발전소에서 30년간 일하며 소설을 썼다. 1994년 같은 발전소의 여직원과 결혼하기 전까지 기숙사 2인실에서 생활했다. 그는 “발전소 4층에서 컴퓨터 공학자로서 홀로 일했다. 퇴근하면 오전 1시까지 글을 썼는데, 컴퓨터가 있는 사무실에서 작업하니 동료들이 내가 게임 중독인 줄 알더라”고 했다.
-유명해진 후에도 발전소에서 일한 이유는.
“중국 SF 출판 시장은 작다. (삼체 3부가 출판된) 2010년까지는 큰돈을 만져보지 못했다. 잡지사에 소설을 투고하면 고료가 1000자 기준 150위안(약 2만8500원)밖에 안 됐다. 장편 소설은 한 권 팔릴 때마다 떨어지는 돈이 2위안(약 380원) 정도였다.”
-공장 다니며 부업으로 글 쓰는 것이 맘은 편하지 않았나.
“얼마나 힘들었는데… 공장 다니면서 장편 쓸 시간이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도 고갈된다. 아무도 내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려고 노력했다. 편의를 봐준다는 뒷말이 나오고 ‘투잡’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어서다.”
-왜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 살지 않나. SF 소설가는 기술의 발전상을 눈으로 봐야 하지 않나.(그는 현재 산시성의 외진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SF 소설 거장으로 꼽히는 아서 클라크도 평생을 스리랑카 어촌에 살았다. 작은 도시에 살면 사회관계가 단순해져 장점이 많다. 한 달에 한 번도 친구를 안 만나곤 한다. 아내도 대도시 삶을 동경하지 않는다.”
-딸이 아빠를 자랑하지 않느냐.
“딸은 대학원 1학년생으로, 환경 공학을 배운다. 이공계 학생이긴 하지만 SF 소설에 관심이 없다. 학교에서는 내가 아빠인 걸 숨긴다. 다른 아이나 학교 측에서 알면 내가 학교에 불려가 특강해야 할까봐 그런다고 한다.”
-소설 쓰는 데 얼마나 걸리나.
“나는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는데, 장편 소설은 한 권에 1년 정도 걸렸다. 삼체 3부가 각 1년씩이었다. 2006년 잡지에 삼체 소설을 연재할 때 1권은 완고한 상태였다. 단편 소설은 2주 정도면 완성하는데, 생각하는 시간이 쓰는 시간보다 길다.”
-지금은 뭘 쓰고 있나.
“‘삼체’ 이후 더 나은 글을 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정점을 찍은 작가들이 다들 겪는 일이다. 지금까지 쓴 글 중에 폐기한 적은 없고, 썼다면 다 출판했다. 스스로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산당원인가.
“당원 아니다. 다른 당·정 직책도 없다.”
-SF의 힘은 무엇이고, 문학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가.
“SF는 독자의 상상력을 일으켜 미지의 세상에 대한 열망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 중국은 창신(創新·창조와 혁신)형 국가를 만들려고 하기에 앞으로 SF 소설 시장이 커질 것이다. 작가이자 SF 마니아로서 나는 미래 우주에 대한 상상을 통해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고 싶다. 우주 속에서 인간은 아주 작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과학과 지식의 힘은 1억~2억년 후 인류를 우주만큼 거대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 SF 작품도 평가해달라. 무엇을 보았고 어떤 영향을 받았나.
“최근 한국 SF 영화 ‘괴물’ ‘설국열차’ ‘승리호’ 등을 인상 깊게 봤다. 한국은 할리우드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준의 SF 영화를 만드는 나라가 된 것 같다. 특히 작품이 축소 지향적이지 않고 중국과 일본 작품처럼 대규모 서사를 풀어낸다. 김초엽 소설가 작품을 비롯해 한국 SF 소설도 종종 읽는다.”
-한국 방문 계획은.
“아직은 없다. 올해 6월 한국에서 열리는 도서전을 참가하려고 했는데, 중국에서 비슷한 일정이 겹쳐서 못 가게 됐다.”
☞류츠신은 누구
영미권에서만 300만 권이 팔린 소설 ‘삼체(三體)’를 쓴 중국 최고의 SF(공상과학) 소설가. 2015년 SF 소설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아시아 작가 최초로 받았다. 1963년 베이징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중국 문화혁명 기간에 직장을 잃고 보내진 산시성의 작은 도시 양취안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 화약 만드는 법을 독학했고, 십대에 천문학에 매료됐고, 1981년에 화베이수리수전대학에 들어가 수력발전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화력발전소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며 SF 소설을 썼다. 1999년 등단해 승승장구했지만, 삼체 3부작 출간 직후인 2010년에서야 발전소 도산에 따라 전업 작가가 됐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류 전기공’이란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반체제 인사는 아니지만, 문화혁명·천안문사태 등 민감한 현대사를 소설에서 다루거나 모티브로 삼아 주목받았다. “훌륭한 SF 소설이란 정신 나간 상상을 뉴스 보도처럼 진실 되게 쓰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9년 그의 중편 소설 ‘유랑지구’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그해 중국 관람객 수 2위에 올랐고, 지난해와 올해 삼체가 중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제작돼 흥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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