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다음 달 9일)를 보름가량 앞둔 지난 23일 오후 8시, 프랑스 공영 지상파 TV채널 ‘프랑스2′에 두 명의 청년 정치인이 출연해 프랑스의 미래에 대한 일대일 토론을 펼쳤다.
주인공은 집권 여당 ‘르네상스’ 소속이자 프랑스 총리인 가브리엘 아탈(35)과 극우로 분류되는 정당인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29) 대표다.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프랑스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두 정치인의 토론 대결이 프랑스 전역에서 18%의 시청률(시청자 360만명)을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성장 동력 둔화, 불법 이민자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의 이슈에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해 사분오열된 프랑스 정치권에 차세대 주자들이 등장해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탈 총리와 바르델라 대표는 젊고 매력적인 ‘꽃미남’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월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된 아탈은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최초의 총리이기도 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아래서 대변인, 교육부 장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한 엘리트 정치인이기도 하다.
아직 서른 살이 안 된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는 2년 전 27세의 나이로 당 대표가 된 인물. 이후 당을 이끌며 유럽연합 선거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흙수저’ 출신의 우파 청년으로도 알려졌다. 바르델라 대표에겐 어딜 가나 ‘셀카’를 찍자는 시민들 요청이 쇄도한다. 120만명의 틱톡 팔로어,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2017년과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잇따라 맞붙었던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RN의 마린 르펜 유럽의회 의원도 자신의 후계자로 각각 아탈 총리와 바르델라 대표를 지목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아탈 총리를 차세대 주자로 낙점한 이유는 젊고 유능한 이미지로 ‘골든 보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2017년 대권을 거머쥐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계의 분석이다. 르펜 의원 역시 자신이 차기 대권을 잡으면 바르델라를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면서 사실상 정치적 ‘아들’로 그를 밀고 있다. 진보·좌파 색채가 짙은 프랑스 정치 문화에서 RN과 같은 극우 정당은 지지율이 높아도 ‘비호감’ 이미지를 벗기 어려운데, 바르델라가 최근 젊고 친근한 이미지로 정당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날 두 사람은 TV 토론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민자 문제, 기후 변화 대책 등 주요 현안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했다. 바르델라 대표는 마크롱 대통령이 시작한 우크라이나 파병 주장을 두고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스스로를 유럽의 총사령관으로 여기며 서방 진영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했다. 아탈 총리는 이에 RN의 전신인 국민전선(FN)이 과거 러시아 정권으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음을 거론하면서 “당신들은 후원자(러시아)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고, 유럽의회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표를 던질 뿐이다”라고 했다.
불법 이민자 문제를 놓고 바르델라 대표는 “유럽 내에서 비유럽인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탈 총리는 “당신 말을 들으면 모든 외국인 뒤엔 체납자나 테러리스트가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는 반란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녹색 전환’에 1000억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정부 입장에 대해선 아탈 총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 세대의 책임과 과제”라고 옹호했지만, 바르델라 대표는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기업과 개인을 위협하고 국가 산업을 위태롭게 하는 독단적 정책”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두 후보의 토론에 대해 “두 차세대 정치 주자들은 프랑스와 유럽에 대해 완전히 다른 비전을 내놨다”고 했다. 현재 유럽의회 선거 여론조사에서는 RN이 30% 넘는 지지율을 얻으며, 1위를 달리고 있다. 집권 여당 르네상스 지지율은 15%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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