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 단체 헤즈볼라를 이끌던 하산 나스랄라의 사망으로 중동 내 반(反)이스라엘 세력의 구심점이었던 이란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1979년 친서방 왕정을 축출하고 들어선 현 이란 집권 세력은 1980년대부터 중동의 반미·반이스라엘 세력을 결집해 ‘저항의 축’을 결성하고 이스라엘과 대리전(proxy war)을 벌여왔다. 그 한 축 헤즈볼라가 붕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이란이 나서지 않으면 저항 축이 내부부터 무너질 수도 있지만 운신 폭은 매우 좁은 상황이다.
이란은 그동안 이스라엘에 수차례 ‘보복’ 다짐을 했지만, 이스라엘과 전면전 및 확전 위험을 피하고자 대응 수위를 조절해 왔다. ‘모든 무슬림의 헤즈볼라 지원’을 촉구한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를 비롯한 이란 수뇌부는 ‘보복’을 외치고 있다. 모하마드 레자 아레프 수석 부통령도 “나스랄라 살해는 이스라엘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최정예 군사 조직인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의 레바논 파병 논의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파병이 실현되면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면전은 초읽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란의 구체적 행동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이란은 올 들어 최소 세 차례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일 기로에 섰다. 4월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혁명수비대 고위 지휘관 두 명이 사망하자 이란은 12일 만인 13일 새벽 이스라엘 본토로 300여 기의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를 날려보내 보복 공습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격추돼 이스라엘이 별 피해를 보지 않자 ‘이스라엘과 합의해 공격 시늉만 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대이스라엘 강경파였던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5월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하고, 온건 개혁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취임한 뒤 이란의 태도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서방과 관계 개선을 통한 국제 고립 및 경제난 해소’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그에게 이스라엘과 벌이는 전면전은 최악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란은 지난 7월 31일 하마스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자국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됐을 때도 배후를 이스라엘로 지목하고 보복을 다짐했으나 구체적 조치는 하지 않았다. 이란은 심지어 최근 이스라엘의 맹공을 받는 헤즈볼라의 지원 요청까지 거절했다고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전했다.
이번에도 이란이 이스라엘에 보복하지 않을 경우 저항 축에 대한 이란의 지도력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스라엘 방송 매체 채널12는 “하니예 사망 이후 ‘저항의 축’ 내에선 ‘동맹 단체 수장이 자국에서 살해됐는데 이란이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 보복을 결행하기에 이란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우선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안전부터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로이터는 “하메네이가 현재 신변 안전을 위해 보안을 강화한 이란 내 은밀한 곳으로 피신했다”며 “이곳에서 헤즈볼라 및 다른 친이란 무장 단체들과 이후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니예의 뒤를 이어 새로 하마스 수장이 된 야히야 신와르 등 살아남은 하마스 지도층 인사들은 나스랄라 피살 이후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서로 연락도 끊었다고 아랍권 매체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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