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발생한 미 최대 건강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UHC) 대표 총격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뉴욕경찰(NYPD)이 현장에서 수거한 탄피에서 범행 동기를 암시하는 단서를 찾아냈다고 5일 전해졌다. 전일 이른 오전 UHC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톰슨(50)은 맨해튼 번화가를 걷던 중 젊은 남성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고 범인은 도주했다.
NYPD는 범죄 현장에서 구경 9㎜짜리 탄피들을 발견해 탄도 분석 등을 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경찰은 탄피에서 ‘delay(지연)’ ‘deny(거부)’ 같은 단어가 새겨진 사실을 찾아냈다. 경찰은 사건 당시 촬영된 방범카메라 영상을 토대로 범인이 사전에 범죄를 계획했다고 보고, 보험사에 원한을 산 사람이 청부 살인을 했을 가능성을 검토해 왔다. ‘지연’ ‘거부’ 등은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할 때 가입자가 듣는 단어들이다. 뉴욕포스트는 이 단어들이 2010년 보험업계를 비판하며 발간된 책의 제목을 연상시킨다는 분석도 내놨다. 럿거스대 법학대학원 제이 페인맨 명예교수가 쓴 ‘지연, 거부, 방어’라는 제목의 책으로, 부제는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이유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다. NYT는 “탄피에 새긴 단어는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부와 관련한 범행이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범죄 계획자가 일부러 새긴 것일 수 있다”고 했다.
톰슨이 CEO로 일해온 UHC 등 미국의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행태로 악명이 높다. 소비자 단체 및 의회에서 반복해서 지적을 당했다. 예를 들어 UHC는 정신 건강 및 약물 남용 치료에 대해 부당하게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는 이유 등으로 미 노동부와 뉴욕주의 조사를 받고 2021년 총 1560만달러(약 220억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 중 1360만달러가 보험금을 받지 못한 가입자에 대한 보상금으로 나갔는데(나머지는 변호사 비용 및 벌금) 그 피해자가 뉴욕에서만 약 2만명에 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보험사 CEO가 도심에서 살해된 사건이 큰 충격과 공포를 주고 있지만, 많은 소비자는 이를 계기로 미국의 보험 시스템과 보험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0월 미 상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UHC의 ‘급성기(질병·부상 초기) 이후 치료’에 대한 보험금 지급 거부율은 2020년 11%에서 2022년 23%로 증가했다. 올해 상원 패널은 UHC 등 미국 3대 보험사가 낙상·뇌졸중으로부터 회복하는 환자들에게 비용이 많이 드는 간호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며 의도적으로 이익을 늘렸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톰슨이 사망한 후 온라인에선 보험사의 실태를 비난하며 살인범을 옹호하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뉴욕의 극작가 벤 퍼버가 X에 보험 업계를 조롱하며 올린 게시물엔 8만5000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X·틱톡 등 소셜미디어엔 ‘거식증 탓에 입원 치료를 받는데 UHC가 입원비 지급을 거부해서 내가 (톰슨보다) 먼저 죽을 뻔했다’ ‘10년 동안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같은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톰슨이 지난해 기본급으로 100만달러, 현금 및 기타 수익으로 1020만달러를 받았다는 사실도 보험 가입자들의 피해 사례와 함께 반복해서 언급되는 중이다.
한편 NYPD는 용의자의 얼굴이 비교적 또렷이 보이는 사진을 두 장 공개하며 공개 수배에 나섰다. 모자 달린 재킷을 입고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사진이 청부 살인 업자보다는 배우 티모톄 샬라메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뉴욕포스트)까지 나왔다. 범행 시점에 범인은 두건을 쓰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상태였다. 그는 총으로 최소 세 발을 톰슨에게 쏜 후 자전거를 타고 센트럴파크로 도주해 경찰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
지금까지 파악된 정보를 종합하면 범인은 지난달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버스를 타고 뉴욕에 들어왔다. 이어 지난달 30일 위조한 뉴저지 면허증을 사용해 맨해튼에 있는 호스텔(여러 사람이 한 방에 묵기도 하는 저렴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이곳에서 다른 남성 두 명과 같은 방을 썼다. 경찰은 범인이 코네티컷주에서 팔린 것과 같은 총을 범행에 사용했다고 보고 추적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그의 범행 동기를 확인하지는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NYPD는 범행 관련 정보에 포상금 1만달러를 건다고 5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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