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람들 다 좋은가요? 여기서 살고 싶어요. (북한에) 가라면 가는데….”
두 손에 붕대가 감긴 채 침대에 누운 북한군 청년 병사가 한 말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2일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교전 중 생포한 북한군 포로 두 명의 신문(訊問) 장면을 공개했다. 러시아에 파병돼 지난해 11월부터 우크라이나와 교전을 벌여온 북한군 목소리가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20세인 이 북한군(이후 병사 1)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고 눈을 끔벅이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고, 26세인 다른 북한군(병사 2)은 턱 부상이 심해 목소리를 못 내고 고개만 움직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 영상을 이날 자신의 텔레그램(모바일 메신저) 채널에 올렸다. 문답은 국가정보원 관계자로 보이는 통역사의 한국어 질문에 북한군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생포된 북한군 병사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이역만리 동토(凍土)에 와서 목숨이 위태롭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병사 1은 “우크라이나 상대로 싸우는 거 알고 있었지”라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지휘관들이 이 상황을 무엇이라 설명했는지를 물었을 땐 강한 북한식 억양으로 “훈련을 실전처럼 해본다고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13일 국정원에 따르면 약 1만2000명으로 알려진 파견 북한군 중 사상자는 벌써 30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20세, 26세… 북한 병사들은 자기가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북한군 포로 두 명은 우크라이나가 일부 영토를 점령 중인 러시아의 쿠르스크 지역에서 생포됐다. 병사 1은 2021년 입대한 소총수이고, 병사 2는 2016년부터 저격수로 복무했다고 알려졌다. 짧은 머리에 코밑수염이 자라난 병사 1은 겁에 질렸다기보다는 사지(死地)에서 벗어난 상황에 안도하는 듯한 태도로 답변했다. 통역사가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라”고 당부하자 고개를 끄덕이다 “집에는 안 보내주겠죠?”라며 말을 흐리기도 했다. 낯선 땅에 내던져져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현실을 자각한 듯한 모습이었다.
파병군의 가족을 포함한 북한 주민에게 병사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터로 갔음을 숨겼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병사 2는 “부모님이 너 어디 있는지 알아?”라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이 병사는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묻자 가족을 생각하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 1은 훈련인 줄 알고 투입됐다면서 전장 상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1월 3일 날 나와서 옆에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보고…. 거기 방공호에 숨어 있다가 1월 5일 날 부상당하고…”라고 했다. 5일은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 지역 요충인 수드자 북쪽에서 대대적 반격을 개시한 날이다.
젤렌스키는 이날 동영상을 공개하고서 소셜미디어 X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억류된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와 북한 군인 (포로) 교환이 벌어질 경우에만 북한 시민을 김정은에게 넘겨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글로 썼다. “귀환을 원하지 않는 북한 병사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등)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도 했다. 젤렌스키가 북한 포로의 우크라이나 혹은 제3국행 가능성을 공식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젤렌스키는 한국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북한 이탈 주민들과 국제 인권 단체들은 국제인권법과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북한 포로들에게 한국행 선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은 지난해 11월 초 우크라이나군과 처음 교전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본격 전투 임무에 투입된 것은 12월 이후로 비교적 최근이며,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거세진 이달 초 북한군의 희생이 급격히 늘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매체들은 “러시아군의 쿠르스크 탈환 공세가 우크라이나군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북한군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워싱턴포스트는 “북한군은 무인기(드론)의 위협이나 주변 전우들의 죽음·부상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돌격한다”고 전했다. 군사 정보 분석 기업 인텔오퍼레이터스는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의 힘을 빼기 위한 ‘일회용 보병’으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총알받이’로 목숨을 잃는 북한군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쿠르스크 전투가 점점 치열해지면서 전장에 투입되는 북한군이 더욱 늘고, 이로 인한 포로 발생도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를 겨냥해 북한군 대상 심리전도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드론 등을 이용해 북한군의 투항을 권유하는 전단을 집중 살포하고 있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은 전했다. 전단에는 “무의미하게 죽지 마라. 항복하는 것이 사는 길이다”라고 한글로 적혔다고 알려졌다.
한편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이날 본지에 “공개된 동영상으로 북한군 파병에 대한 진실 논란이 잦아들기 바란다”고 전해 왔다. 그는 “한국 내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조작이다’ ‘동영상에 나온 병사들은 북한인이 아닌 몽골계 러시아인이다’ 같은 주장이 판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는 현재 러시아가 유럽과 우크라이나에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으로 펼치는 여론전과 같은 성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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