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동 시리아를 24년간 철권통치해온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축출한 반군은 과도정부를 세운 뒤 여성 업무를 전담하는 ‘여성국’을 설립하고 아이샤 알뎁스를 국장으로 선임했다. 반군은 한때 극단주의 테러 단체 알카에다와 연계됐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시리아가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처럼 여권 탄압국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알뎁스의 등장은 시리아가 아프가니스탄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국제사회를 향한 메시지로도 읽혔다.
국립 다마스쿠스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시리아 북부와 튀르키예가 접한 국경 지대에서 활동해온 난민 구호 활동가다. 특히 난민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보면서 “여성도 남성처럼 땅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성평등 역할을 강조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25일 메신저로 만난 알뎁스는 “시리아 여권(女權)의 발전을 위한 길을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알아사드 정권에서 북한과 밀착해온 시리아는 유엔 회원국 중 한국의 유일한 미수교국이고, 과도정부 인사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여성국장에 부임한 뒤 약 한 달이 지났는데 소회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내가 임명된 건 시리아 여성들의 진전을 보여주는 증거이므로 매우 자랑스럽고 자신감을 갖고 임하려고 한다. 그 길은 우리 모두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다.”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업무는.
“알아사드 정권에 구금됐다가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에 입성하면서 풀려난 여성들에 대한 인권침해의 진상을 조사하는 것이다. 우선 여성들이 겪었던 구체적인 탄압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파악한 것만으로도 가혹한 사례가 많았다. 정부 관계자로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단순히 피해 사례를 축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성 문제들에 대해 종합적인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와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 집권으로 이어진 반세기 폭정에 저항했던 시리아인들은 무작위로 구금됐다. 대표적인 구금 장소는 다마스쿠스의 세드나야 감옥이다. 이곳으로 끌려온 상당수가 모진 고문을 받고 더러는 의문사했다. 알아사드 정권이 축출된 뒤에야 비로소 세드나야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풀려났고, 수많은 인권 탄압 사례가 확인됐다. 그중에는 30대 여성이 군인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한 아이를 출산한 경우도 있었다.
-과도정부가 왜 여성 부서를 만들고 담당자까지 임명했을까.
“시리아 여성들의 잠재력을 믿었고, 국가 재건 과정에 여성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인선된 다음에는 마이사 사브린 전 중앙은행 부총재가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됐다. 여성 문제뿐 아니라 통화정책과 금융정책 같은 민감한 직역까지 여성을 최고 책임자로 앉혔다는 점을 주목해달라. 시리아의 새 정부가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과도정부는 새로운 헌법 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여성의 권리도 보장하게 되나.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게 내 임무다. 현재 법률 위원회가 헌법 초안 작성을 맡고 있다. 새로운 헌법 초안을 두고 과도정부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댔는데 이 과정에서 현행 헌법 33조가 주목받았다. ‘모든 시리아인은 성별·출생지·종교·신념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고 명시한 내용이다. 이 조항에 대해 과도정부는 앞서 여러 차례 수호 의지를 확인했다. 이 조항에 따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리아 과도정부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얼마 전 다마스쿠스에서 노르웨이 대사 대리와 만나 당면한 어려움을 얘기했다. 전기 등 필수 인프라가 제대로 복구가 돼 있지 않고 식료품값은 치솟는 등 많은 국민이 생활고를 겪고 있다. 그러나 나는 자유롭고 행복한 미래의 시리아를 낙관한다. 시리아인들은 이 어려움을 연대해서 이겨낼 것이다. 시리아가 다시 재건돼 국제사회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우선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재건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제 역할을 하는 과정에 시리아 여성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성원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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