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계 각국에 무차별 관세를 물리며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히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장악하겠다는 구상도 발표했다. 2기 임기를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도 지구촌을 혼돈으로 몰고 가는 트럼프 정책이 쏟아지면서 워싱턴 DC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대통령들은 자신의 정치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이곳을 단장해 왔기 때문이다.
오벌 오피스는 약 75.4㎡(약 22.8평) 규모로, 타원형 구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으며, 그가 업무를 보는 ‘결단의 책상(레절루트 데스크·Resolute Desk)’이 있다. 1854년 북극해에서 표류하던 영국 해군 탐사선 레절루트호를 인양·송환해 준 미국 호의에 보답하고자 1880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해체된 배의 나무판자로 만들어 미국에 선물한 책상이다. 책상에 놓인 전화 두 대는 각각 백악관 내선용과 보안용이다. 여기에 1기 때 설치했던 ‘콜라 버튼’이 4년 만에 돌아왔다.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다이어트 콜라를 즐기는 트럼프가 이 버튼을 누르는 즉시 테이블에 콜라가 ‘대령’된다.
결단의 책상 뒤 보조 책상에서 눈에 띄는 것은 FIFA 월드컵 우승 트로피 복제품이다. 내년에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공동 개최하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미국 우승의 염원을 담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에서 축구는 풋볼·야구 등에 비해 인기가 밀리지만, 새로운 지지층인 히스패닉계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도 감안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분석도 나온다.
역대 대통령들은 본보기로 삼은 전임자 모습을 담은 그림과 조각 등을 통해 정치철학을 드러냈다. 이런 점에서 돋보이는 인물은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다. 깡마르고 턱수염이 덥수룩한 링컨 특유의 얼굴을 담은 원형 부조·초상화·흉상이 결단의 책상 주변에 배치됐다. 남북전쟁을 끝내고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을 부각해 자신도 ‘분열된 미국을 통합하겠다’는 메시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초상화도 4년 만에 오벌 오피스에 돌아왔다. 잭슨은 멕시코 치하 텍사스를 독립시켜 미국 영토로 만들기 위한 기반을 닦았는데, 트럼프는 텍사스 등 미 남부와 멕시코 사이 해역 명칭을 ‘멕시코만’에서 ‘미국만’으로 바꾸고 그렇게 표시한 지도도 오벌 오피스에 가져다 놓았다.
트럼프는 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생일이었던 지난 6일에는 오벌 오피스에 걸려 있던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 초상화를 방 안의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레이건 초상화를 걸었다. 트럼프는 레이건 집권기 구호를 변용해 자신의 정치 구호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만들 만큼 레이건을 추앙했다. 레이건 초상화가 걸린 벽 아래에는 말을 타고 달리는 카우보이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가 프레더릭 레밍턴의 작품을 배치했다.
집무실에 놓인 가족사진 액자들도 눈길을 끈다. 부모와 누나, 아들 배런, 딸 티퍼니 등과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대통령이기에 앞서 듬직한 아들·동생·아버지라는 가정적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성소수자 권익 옹호 주장에 맞서 전통적인 가족적 가치 복원에 앞장서겠다는 메시지도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책상 왼편에는 챌린지 코인과 배지 30여 개가 놓여 있다. 챌린지 코인은 주로 정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돼 판매되는 동전 형태의 기념품이다. 지난해 7월 펜실베이니아 유세장 암살 미수 사건 때 총알이 스쳐 지나간 귀에서 그가 피를 흘리며 외쳤던 ‘Fight(싸우자) Fight Fight’ 문구가 새겨진 챌린지 코인 등이 놓여 있다. 그 옆으로 뉴욕경찰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 미 해군 등의 배지가 있다. 사업가로 활동한 뉴욕,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와의 인연을 부각하는 동시에 법질서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누가 오벌 오피스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들락날락해야 했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흉상도 트럼프의 재입성과 함께 복귀했다. 앞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때 기존에 있던 처칠 흉상을 집무실 밖으로 내놓자 당시 런던 시장이었던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케냐 혈통인 오바마가 가진 반영 감정을 상징한다”며 비판해 논란이 됐다. 오바마의 후임으로 1기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는 흉상을 다시 갖다 놓았고, 코로나가 터졌을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끌었던 처칠이 지금 내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하며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 부각에 주력했다. 트럼프는 조 바이든 대통령 때 오벌 오피스에 갖다 놓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흉상은 그대로 뒀다.
오벌 오피스에 세계의 시선이 쏠리면서 이곳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관심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정부효율부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아들을 데리고 오벌 오피스를 찾아와 트럼프가 앉은 의자 옆에서 30여 분간 서 있는 모습이 공개되자 ‘서열 정리’라는 얘기가 나왔다. 최근 머스크가 ‘결단의 책상’에 앉은 모습을 합성한 사진이 시사 주간지 타임 표지로 실리는 등 ‘머스크 실세론’이 그치지 않자 트럼프가 작심하고 누가 절대 권력인지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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