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러시아를 돕기 위해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 파병됐다 지난달 붙잡힌 북한군 포로 두 명을 본지가 만났다. 각각 군 복무 10년 차와 4년 차에 파병된 리모(26·왼쪽)씨와 백모(21)씨는 자기들이 정찰총국 소속이며 북한 보위부 요원들의 감시 아래 있었다고 말했다./키이우(우크라이나)=정철환 특파원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군이 지난달 9일 생포한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 두 명을 본지가 우크라이나의 한 포로수용소에서 최근 만났다.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의 세계 첫 언론 인터뷰다. 각각 북한군에서 10년·4년 복무하다 지난해 10~11월 러시아 쿠르스크로 파병된 정찰·저격수 리모(26)씨와 소총수 백모(21)씨는 수용 시설에서도 깊숙한 곳에 있는 독방에서 각각 지내고 있었다. 파병 북한군은 모두 폭풍군단 소속으로 알려졌으나, 두 사람은 인터뷰에서 모두 “정찰총국 소속 병사”라고 밝혔다.

리씨와 백씨는 인터뷰에서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 쿠르스크의 북한군을 감시·통제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한국군이 무인기로 북한군을 공격하고 있다”는 거짓말로 적개심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 리씨는 “(보위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군 무인기(드론) 조종사가 몽땅 다 대한민국 군인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 외아들이다. 리씨는 평양 출신으로 “지난해 10월 10일 ‘훈련받으러 유학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 했다. 백씨는 “입대하던 해에 아버지가 병사해 홀어머니(50)만 남았다”고 했다. 아직 20대 초·중반인 두 사람은 “제대하면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리씨는 “대한민국에 가고 싶다”고도 했다.

북한군 포로 인터뷰는 복잡한 협의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두 청년의 손을 잡아보니 20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거칠고 두꺼웠다. 오랜 노동과 가혹한 훈련으로 파인 상처와 나무껍질 같은 굳은살이 양 손바닥에 와닿았다. “건강한 모습으로 꼭 다시 만나자”는 작별 인사에 두 사람은 포옹으로 응답했다. 두 사람 인터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1회는 저격수 리씨다.

※편집자주 본지는 이번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 인터뷰 보도 과정에서 포로의 실명을 밝히지 않고,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일부 정보 역시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이는 전쟁 포로에 관한 국제법 규정 등에 따라 포로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조치입니다. 그러나 사진·동영상은 이미 우크라이나 정부가 두 사람 얼굴을 여러 차례 드러냈고 한 달 이상 세계적으로 퍼져 모자이크 등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판단, 편집 회의를 거쳐 모자이크 없는 사진과 동영상을 쓰기로 결정하였음을 알립니다.


◇“군복무 10년간 부모님 한 번 못 봐… 병사 대부분 외아들”

본지와 인터뷰한 스물여섯 살 북한군 병사 리모씨가 지난달 우크라이나 당국에 체포된 직후 모습. 턱에 상처를 입고 얼굴을 붕대로 감쌌다. 당시 부상에 대해 리씨는 "총알이 팔을 뚫고 뼈를 꺾어 통과해 턱을 까서 턱이 다 부서져 나갔다"고 말했다./텔레그램
러시아 쿠르스크에 파병돼 우크라이나군과 교전하다 지난달 포로가 된 북한군 병사 리모(오른쪽)씨가 정철환(왼쪽) 특파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달 체포 직후와 비교해 얼굴의 상처가 많이 가라앉은 모습이다. 리씨는 함께 파병 온 전우들은 모두 숨졌다고 밝히고 "대부분 외아들인데 부모들 마음이 어떻겠냐"며 한숨을 쉬었다./정철환 특파원

<1> 26세 저격수 리씨

러시아·우크라이나가 교전을 벌이는 러시아 쿠르스크주에 지난해 말 파병됐다 부상당해 포로로 잡힌 북한군 병사 리○○(26)씨는 지난달 9일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될 당시 오른쪽 팔과 턱에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처음 세상에 그의 존재를 알린 동영상에서도 그는 턱을 꽁꽁 싸맨 채 말을 하지 못하고 힘든 표정이 역력했다. 이후 약 한 달 만에 우크라이나 모처의 수용소 독방에서 만난 그는 어느새 많이 회복돼 있었다. 턱의 압박 붕대를 풀었고 어눌하게나마 말할 수 있었다. 턱엔 총상으로 입은 큰 상처가 아무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래픽=김현국

그의 방엔 작은 중국산(産) TV가 있었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인터뷰를 시작하려 하자 그는 리모컨을 들어 TV 소리를 줄였다. 그는 “기자라고 하셨죠?” 하며 이야기 중간중간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다. 리씨는 북한의 특권층이 모여 사는 평양 출신인데도 환경이 어려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전쟁터까지 나와 숱한 죽을 고비를 넘겼다”며 눈물을 삼켰다.

-부모님은 모두 평양에 있나요.

“(끄덕끄덕)”

-형제들도 있을 것이고.

“나 하납니다.”

-부모님은 ○○씨 여기 있는 것 모르시죠.

“네. 모릅니다. 나오기 석 달 전부터 집하고 일절 연계(연락)를 못 가졌습니다.”

-러시아로는 언제 출발했나요.

“우리가 출발해서 간 게 10월 10일. 원래 자강도 (홍수) 피해 복구 지원을 나갔다가 한 달 만에 철수해서…. 훈련장에 가 가지고 훈련을 하다가, 10월 초에 떠나 러시아에 도착했습니다.”

그래픽=양진경

-그럼 쿠르스크에는 언제 도착했나요.

“12월 중순일 겁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훈련하다 이송해서 이리로 왔습니다.”

-부모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솔직히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환자입니다. 중환자입니다.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하고, 어머니는 소화조차 잘 시키지 못합니다. 아마도 내가 잡힌 게, 내가 포로가 된 게 우리나라 정부에 알려지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양에 있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이미 그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공개했다. 이에 따라 이들의 신원을 확보했다고 추정된다.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본지도 그의 발언을 그대로 싣는다.)

-본래 소속 부대는 어디인가요.

“정찰총국.”

-사병으로 복무했습니까.

“예, 제대할 나이입니다. 2015년에 입대했습니다.”

-정찰·저격병 등으로 복무했다고 들었는데.

“예.”

-무슨 이야기를 듣고 러시아에 왔나요.

“유학생으로 훈련한다고. 전투에 참가할 줄은 몰랐습니다.”

-언제 전투에 참가한다고 처음 알았습니까.

“쿠르스크 지역에 우리가 와 가지고, 대기 구역이라는 데 있었는데 거기서 알려줬습니다.”

-쿠르스크까지 어떻게 왔나요.

“기차 타고, 비행기도 타고, 버스도 타고.”

-몇 명이 같이 왔죠?

“2500명가량이 왔습니다.”

-지금 북한에선 우리 동포 청년들이 여기 와서 전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요.

“비밀이지요.”

-왜 그런다고 생각하나요.

“대외적 조건(대외 관계의 입장)이 훼손될 가능성 그런 거.”

-러시아군하고는 어려움 없었습니까.

“우리는 아랫단에서는 별로 말하지 않고, 윗단에서 모두 조직해 가지고. 탄약 문제라든가 피복 물자 그런 거는 모두 윗단에서 다 체결해 가지고 다 공급하게끔 그렇게 해놓고 사병들이랑 러시아(군인)하고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통은 어떻게 했나요.

“스마트폰 번역기로 했습니다.”

-평양에 있을 때 스마트폰을 써봤나요.

“스마트폰 번역 기능은 여기 와서 처음 써봤습니다. 그 전에는 외국인을 상대 안 했으니까.”

-파병된 부대(폭풍군단)는 충성심 높은 부대입니까.

“전투력이 높으니까. 공사, 전투 임무 수행 등 앞장선다는…. 삼지연 건설 아나?”

-그게 뭡니까.

“삼지연시(김정은이 전략적으로 재개발한 관광도시)를 건설하는 공사입니다. (우리 부대가) 12월에 출발해 공사를 하는데, 눈과 추위가 심했습니다. 2019년도에. 가니까 인가 한 채 없는 산중에 들어가서 눈이 가슴까지 빠지는데 들어갔단 말입니다. 거기서 병영을 건설해야 하는데, 곡괭이로 종일 요만한 돌망구(돌멩이) 하나, 땅덩어리에서 돌멩이 하나 캐놓으면 손이(얼어 붙는다는 듯한 동작). 엄혹한 날씨란 말입니다. 날씨가 너무 차서 오줌을 싸면 그 즉시 얼어가지고 떨어진단 말입니다.”

-쿠르스크와 비교하면 어디가 더 춥습니까.

“거기가 더 춥습니다. 여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기 있으면서 식사는 어떻습니까.

“아직 내가 턱이 낫지도 않고 해서 딱딱한 음식을 못 먹습니다. 죽 같은 거… 아니면 라면을 먹고픈데 라면을 못 먹습니다.”

-턱과 팔 부상은 왜 입었습니까.

“1월 5일부터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먼저 앞장선 단위(부대)들이 모두 희생됐습니다. 무인기(드론)하고, 포 사격 때문에 많이 희생됐습니다. 러시아에서 (방어용) 포 사격을 제대로 안 해줘서 우리가 무모한 희생을 많이 했습니다. 포 사격을 쏴준다고 해도 (우크라이나군) 후측 방향으로만 쏴 줘서, 우리가 무모하게 희생됐습니다.”

작년 12월 북한군 추정 병사를 공격하는 장면을 촬영한 우크라이나 드론 카메라 영상. 앞부분에 산타클로스 모양 인형이 달려 있다. /우크라이나특수작전군

-그날 몇 명이 나갔습니까.

“배후 타격 조로 해가지고 세 명이…. 방풍림 시작과 끝머리에서 나머지 중대가 공격을 시작한단 말입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뛰어들어 가지고 그 가운데서 배후 교란을 하면서 타격을 시작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 들어갔다가 매복에 걸려가지고…. 매복에 안 걸릴 수도 있었는데, 무인기 때문에 걸렸단 말입니다.”

-훈련할 때 드론에 대해 자세히 배우지 않았습니까?

“배웠습니다. 드론에 대한 전투 형식이라든가 이런 건 따로 구성된 건 없습니다. 우리가 훈련할 때는 ‘빠른 놈만이 산다’ 이런 식으로 훈련을 했으니까. 나타나면 뛰거나 은폐지에 숨거나, 맞바닥(땅바닥)에서 총으로 쏘고 그런 훈련만 했지 무인기를 직접 떨구는 훈련을 못 했습니다.”

-그럼 희생을 치르면서 조금씩 드론에 대해 알았겠군요.

“예.”

-드론에 발견된 후 어떻게 됐나요.

“우리 조가 세 명인데, 조장하고 내 밑은 벌써 총에 맞아서 쓰러진 상태고 나 혼자 남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나도 필사적으로 맞바닥에서 총을 쏘면서 유리한 지형에 은폐하려고 가는 도중에 총에 맞았단 말입니다.”

-어디에 맞았습니까.

“총알이 팔을 뚫고 뼈를 꺾어 통과해 가지고, 턱을 깠단 말입니다. 턱이 다 부서져 나갔단 말입니다. 그다음에 의식이 없어서…. 아무래도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의식이 없어서 쓰러졌단 말입니다. 눈을 떠보니 밤이더란 말입니다. 맞은 건 새벽에 맞았는데. 그담에 일어나려고 하니까네, 머리를 잡아 돌리듯 드니 빈혈이 막 어지럼증이…. 거기 한참 앉아서 있다가, 내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자고 가던 상태에서 우리(북한) 군인들을 만났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대가 아니고, 우리 대대의 다른 중대란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턱과 팔을) 붕대랑 다 싸매주고 그랬단 말입니다.”

-그렇게 응급 조치를 해줬으면 왜 같이 복귀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가려고 보니까…. ‘마귀 무인기’라고 압니까?”

◇“중대 동기들 다 죽고 나만 생존… 수류탄 있었으면 자폭했을지도”

-그게 뭔가요.

“아주 큰 무인기인데 폭탄을 달고 다니는…. 열 영상 감지기를 달아서 밤마다 폭탄을 떨구고 다니는 무인기란 말입니다. 그게 공중에서 계속 돌고 무인기가 열 영상 감지기로 서치(수색)를 해가지고 수류탄을 떨구고 해서 (거기서) 가지를 못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장악한 지역에 가서 거기서 은폐를 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새벽 3시쯤 우크라이나군이 장갑차를 타고, 장갑차에서 기관총을 쏘며 우리 장악 지역으로 우크라이나 병사들을 보내서 작전을 벌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거기 은폐지에 있다가는 다들 결딴 날 상황에 있었으니까 ‘이젠 뜨자’ 하고 거기서 철수해서 가는 도중에 또 무인기가 공격해 와서 날 구해준 사람 한 명 두 명 죽고, 그러면서 나 하나 살아남았단 말입니다.”

-몇 명이 있다가 혼자 살아남은 거죠.

“나 말고 다섯 명이 있던 상태에서 다섯 명이 몽땅 다 희생됐습니다.”

-그다음엔 어떻게 된 건가요.

“캄캄한 밤이 되었는데 지형을 내가 잘 모르니까 고저(그저) 감각적으로 ‘저 능선만 넘으면 우리 구역이겠다’ 싶어서 갔는데, 아니더란 말입니다.”

-방향이 틀렸군요.

“방향이 틀려서… 그담에 다시 길을 찾아가지고, 다시 가야 한다고 오르는 상태에서 내가 포로가 됐단 말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팔도 못 쓰고 방탄복에 수류탄이고 칼이고 무장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부상을 당했으니까 무거운 거를 못 들고 다니니까는….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반항을 해도 내가 잡히는 건 분명하고. 혹시 수류탄이라도 있었으면 내가 자폭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자폭하라고 지시를 받았나요.

“우리 인민 군대 안에서 포로는 변절이나 같습니다.”(잡히면 자폭하라고 지시를 받았다는 뜻)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생각이 많습니다.”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날 테고.

“부모님이 못 견디게 보고 싶습니다. (한참 생각) 황해남도 신천이 내 복무 장소입니다. 평양하고 거리가 가깝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내 군사 복무하는 동안 한 번도 집에 못 가봤습니다.”

-10년 동안 한 번도 못 갔습니까.

“예. 부모하고 전화상으로는 이야기를 많이 해봤는데 부모님은 한 번도 못 만났습니다.”

-지금 북으로 돌아가면 또 여러 가지 고난이 있을 텐데.

“당연하지요.”

-미래에 대해서 좀 정해진 게 있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80%는 결심을 했습니다.”

-어떻게 결심했습니까.

“(한참 고민하다) 기자라고 하셨죠? (또 한참 생각하다) 우선은 난민 신청을 해가지고 (잠시 생각하다) 대한민국에 갈 생각입니다. 내가 난민 신청을 하면 받아줄까요?”(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이 가능할지는 한국 정부에 달렸다”고 했다.)

-쿠르스크에 있는 전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우선 지금 전투 상황이 궁금합니다. 쿠르스크는 지금 다 해방됐나요.”(우크라이나군을 몰아냈냐는 뜻)

-아닙니다. 해방 못 했습니다.

“(한숨).”

-혹시 (북한군이) 쿠르스크 말고 다른 곳에 투입될 가능성은?

“쿠르스크를 해방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쿠르스크 그 지역에 그게 있지 않습니까. 우라늄·핵이 있지 않습니까.”

-핵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가 있습니다. (파병 북한군이) 그거를 지켜야 하는 건가요.

“예.”

-그게 지금 쿠르스크에서 작전을 펼치면서 아주 중요한 사항이군요.

“(끄덕끄덕)”

-같이 파병 온 부대 전우 중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거의 다 희생됐습니다. 나하고 같이 군대에 나온 사람들은 다 희생됐습니다. 우리 중대에는 내 동기가 다 희생되고 하나도 없습니다.”

-한 중대 인원이 어느 정도인가요.

“한 63~65명 되는데… 우리 기(기수)만 여덟 명인가 되는데. 다 희생되고 없습니다.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 살아생전 나도 처음 전투해 본 것이었습니다. 가서 동료 시체를 보니까 생각이 많더라고요. (포로로 잡힐까 봐) 자폭했는데 머리통이 없고 상반신이 없다…. 엄동설한에 이렇게 눈 내리는데 누워 있는데 그 피 냄새가 아직도….”

-동료들 시신은 어떻게 하도록 지시를 받았습니까.

“전투가 끝나면 그 시신을 찾아서 가져간다고 했는데….”

-실제로 수습하는 건 못 봤나요.

“(끄덕끄덕).”

-(시신을 거둬도) 신원 알기가 힘들 것 같은데.

“(한숨) 아후…. 그 부모들은 어카겠습니까. (북한에선) 자식이 하나 아니면 둘을 낳는데 거의 다 외아들이란 말입니다. (한숨) 내가 중대에서 전투에 가장 마지막에 참가했단 말입니다. 선행한 소대들이 다 동원되어서 희생자가 많이 나고, 병원으로 실려가고 그랬으니까니. 그때까지 우리는 전투하는 중대들 도와가면서 부상자 나르고, 물자 해주고 그러다가 인원이 없어서 우리가 동원되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망자가 많이 날 줄이야….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전투에 참가해 보니 정말 치열하고…. 내가 (사람) 죽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직접 내 옆에서 총에 맞거나, 수류탄 터져가지고 죽는 거 처음 봤습니다. 나하고 같이 말하고 했던 사람들이 아무 말이 없더군요.”

-아까 마귀 드론이라고 했죠, 귀신 같아서. 정찰 드론을 말했는데, 또 어떤 드론이 있나요.

“자폭 드론. 무인기에 대해서 방심했지요. 무인기가 제일…. 무인기 때문에 많은 희생이 났지요.”

-부대 내에 보위부(북한 정보기관)에서 온 사람들이 있나요.

“대대(약 500명)마다 한두 명씩 나와 있습니다.”

-이분들 평소에 사상적·규율적으로 많이 통제를 하시고?

“근무적으로 통제도 하고, 사상적으로 통제도 하고. (보위부 사람들이) 내가 전투하기 이전에 하는 말이 (우크라이나군) 무인기 조종사들 말입니다, 그 무인기 조종사들이 몽땅 다 대한민국 군인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다들 그렇게 믿고 전투했나요?

“(끄덕끄덕).”

-전투를 하면서 우크라이나군도 있지만, 대한민국 군인들하고 싸운다고 생각을 하겠네요.

“(끄덕끄덕).”

-혹시 그래서 더 악착같이 싸워야 한다고 하는 건가요.

“우리는 실전 경험은 처음입니다. 아마도 싸움하는 게 수월치 않을 겁니다. 훈련 시작할 때부터 좀 뭐라고 해야 하나, 육체적으로보다도 사상적으로 악질이라고 해야 할까. 무슨 산악 행군이고, 체력 단련 훈련이고, 사격 훈련이고, 순전히 악으로…. 거기서 떨어지면 수치로 생각해서 필사적으로 훈련했으니 힘들 겁니다.”

-북에 있을 때 한국에 대해 얘기 많이 들어봤습니까.

“얘긴 많이 못 들어봤습니다.”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들은 적 있지요.

“음악은 좀 들어봤는데, 드라마는 못 봤습니다. 드라마 같은 경우는 잘못 보면 잡혀가니까.”

-본래 하고 싶은 일이 뭐였나요. 편하게 얘기해 보십시오.

“(제대 후) 공부를 해가지고, 대학을 다니려고 했습니다. 원래 우리 아버지 쪽 친척들을 놓고 보면 몽땅 다 과학자 집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내가 집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집이 너무 한심해서 고생도 많이 하고, 경제적으로 타격을 너무 많이 받아서 돈 고생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또 군대 나와 가지고 정신 육체적으로 매우 타격을 커다랗게 받을 만큼 그러한 일도 많았고, 인간으로서 체험해 볼 수 있는 그런 악조건 다 체험해 본 것 같습니다. 죽을 고비도 수많이 당해 보고…. 이제 진짜 죽을 고비를 넘어서 이렇게 포로가 됐구나. (한숨) 나도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내 꿈을 이뤄보고 싶습니다. 내 꿈을 꽃피워 보고 싶단 말입니다. (한숨) 나는 아직 나이가 젊거든요.”


◇北 병사를 읽는 4개 키워드

삼지연시 건설 : 북한 김정은이 2018~2021년 백두산 인근 량강도 삼지연시에서 벌인 대규모 건설 사업. ‘김일성·김정일의 도시’이자 혁명의 도시로 불리던 삼지연을 ‘김정은의 도시’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은 고층 호텔 등을 세워 국제적 관광지로 재개발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폭풍군단 : 북한 특수작전군 예하의 정예 특수부대. 한국 특수전사령부(특전사)와 비슷한 성격이지만 규모가 더 크고 작전 범위가 넓다. 전체 병력 규모는 4만~8만명이고 10~20대의 젊은 군인으로 구성됐다고 추정된다.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쿠르스크에 파병한 북한군 중 상당수가 이 부대 소속이라고 알려졌다.

자강도 홍수 : 지난해 7월 북한 북부 자강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 압록강과 그 지류인 장자강 주변 지역에 홍수와 산사태가 동시에 발생해 큰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한 재해다. 주택 200채 이상이 매몰되고 인명 피해가 1000명에 달했다고 알려졌다. 국제 사회의 지원을 거부해 주민들이 김정은 정권에 불만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도 전해진다.

쿠르스크 원전 :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접경지인 쿠르스크주(州)에 있는 원자력 발전 시설. 두 개 원자로가 가동 중이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60㎞ 떨어진 곳에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주를 침공해 일부 지역에서 교전이 벌어지면서 안전 우려가 제기된다. 파병된 북한군은 대부분이 쿠르스크에 투입됐다고 알려졌다.

러시아 군에 파병됐다가 지난달 붙잡힌 북한군 포로 두 명을 본지가 만났다. 각각 군 복무 10년 차와 4년 차에 파병된 리모(26·왼쪽)씨와 백모(21)씨는 자기들이 정찰총국 소속이며 북한 보위부 요원들의 감시 아래 있었다고 말했다./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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