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도심은 오렌지색 물결로 뒤덮였다. 텔아비브 미술관 앞 ‘인질 광장’에는 오렌지색 꽃다발이 수북이 쌓였고, 밤이 되자 기차역을 비롯한 공공 시설에 오렌지색 조명이 켜졌다.
지난 20일 주검으로 돌아온 ‘최연소 인질’ 크피르 비바스(피랍 당시 생후 9개월)와 형 아리엘(4), 엄마 시리(32)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오렌지색은 붉은 머리칼을 가졌던 두 아이를 기리는 상징이다. 이날 비바스 가족과 함께 또 다른 인질 오데드 리프시츠(83)의 시신도 인계됐다.
소셜미디어에서도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끝없이 이어졌다. 텔아비브 시내에서 만난 아미트(19)씨는 “이스라엘 국민이라면 누구나 비바스 가족이 살아 있기를 바랐을 것”이라며 “정부는 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 사회는 하마스의 기습이 있었던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장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가자지구 인근 니르 오즈 키부츠(집단농장)에 살던 비바스 가족은 그날 한꺼번에 납치됐다. 이후 나이 어린 크피르와 아리엘은 하마스의 극악무도함과 인질의 연약함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져 왔다.
이스라엘 시민들은 지난달에도 크피르의 생일을 맞아 집회를 여는 등 이들이 살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인질로 잡혔던 아빠 야르덴 비바스만 지난 5일 생환하고, 시리와 두 아이들이 시신으로 돌아오면서 이스라엘 전역은 충격과 비통에 빠졌다.
이 가족을 빨리 구출하지 못한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분노도 극에 달했다. 2023년 12월 1일 하마스는 시리와 두 아이가 11월 가자지구에서 사망했다며 시신을 돌려보내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당국은 비바스 가족의 사망을 확인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의 생존 여부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야르덴의 누나이자 아이들의 고모인 오프리 비바스는 “정부가 시리와 아이들을 사망자로 처리한 명단을 발표하면서 유족에게 어떤 사전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며 “어떻게 우리에게 통보하기도 전에 (사망 사실을) 공개할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유족들이 26일 예정된 시리와 두 아이의 장례식에 어떤 정부 인사도 참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발표하자 정부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23일 이스라엘군 장교 전역식에서는 연설에 나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청중이 “왜 그들(비바스 가족)을 데려오지 못했냐”고 소리치는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바스 가족의 죽음은 기한 만료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1차 휴전의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달 19일 발효된 42일간의 1차 휴전은 다음 달 1일 종료된다. 비바스 가족이 살던 키부츠 주민들은 “정부는 휴전 협상과 모든 인질의 즉각적인 석방을 위태롭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휴전 연장을 촉구했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도 “납치된 형제자매들을 모두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비바스 가족을 위한 복수를 주장하며 전쟁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시신 송환 과정에서 하마스가 보인 행태에 분노가 커지고 있다. 하마스는 20일 인질 시신 4구를 이스라엘 측에 인계하기 전 관을 가자지구에 설치된 무대에 전시했다. 법의학 검사 결과 신원 미상의 시신을 시리의 시신이라며 인계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이 “부검 결과 크피르와 아리엘은 공습으로 사망한 게 아니라 하마스 대원에게 맨손으로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전쟁 재개 여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종료 시한이 가까워질수록 휴전 지속 여부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23일 돌연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을 연기했다. 휴전 합의에 따르면 전날 이스라엘 인질 6명 석방에 맞춰 팔레스타인 수감자 602명을 석방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인질을 모독하는 의식 없이 송환이 진행되고, 남은 인질의 석방이 보장될 때까지 수감자 석방을 연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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