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열린 연례 정치 행사 선전시 정치협상회의(정협) 현장에 로봇 기자가 등장했다. 콰푸(태양을 좇는 신화 속 인물)라는 이름의 키 160㎝짜리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 ‘PRESS’(보도) 조끼를 입고 선전위성TV의 일일 기자로 투입된 것이다.
콰푸는 정협 위원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어떤 분야에 관심이 많은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엄숙한 정치 무대에서 인간과 로봇이 대화를 주고받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콰푸는 중국 로봇 회사 러쥐로봇이 2023년 12월 출시한 모델이다. 화웨이의 AI(인공지능) 모델을 탑재해 인간과 대화가 가능하고, 최대 시속 5㎞로 달릴 수도 있다. 진흙 바닥이나 미끄러운 눈밭에서도 두 다리로 잘 걷는다. ‘몸값’은 최소 60만위안(약 1억2000만원)이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굴기(우뚝 일어섬)가 본격화되면서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이 연구실·전시관을 넘어 일상에 침투하고 있다. 미국 챗GPT와 중국 딥시크의 대결 구도로 가속화된 AI 전쟁이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2일 베이징시 하이뎬구(區)에서는 경찰관을 연상시키는 옷을 입은 키 120㎝의 휴머노이드가 건널목에서 양팔을 흔들며 ‘교통 봉사’를 했다. 칭화대 출신 청하오가 2023년 설립한 베이징자쑤진화과기의 로봇으로, 관절을 360도 회전할 수 있는 유연한 몸이 특징이다.
지난달 춘제(중국 설) 연휴 기간 5억명 이상이 시청한 CCTV 방송 특집 쇼에선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16대가 붉은 옷을 입고 군무를 펼쳤다. 이후 중국판 쿠팡 징둥에서 유니트리의 로봇 ‘G1’이 품절 사태를 빚었다. 무게 35㎏에 키 127㎝인 G1은 유연한 손을 갖추고 2~4시간 작동할 수 있어 일상생활 보조용으로 적합하다. 판매가는 9만9000위안(약 2000만원)이다. 중국 소셜미디어 더우인에는 하루 5000위안을 받고 G1을 빌려준다는 광고도 올라왔다.
엔진AI는 마블 영화 주인공 아이언맨을 연상시키는 8만8000위안짜리 휴머노이드 ‘PM01’을 지난해 12월에 출시했다. 이 로봇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 덕분에 선전시에서 ‘보조 경찰’로 발탁돼 순찰을 돌고 있다.
중국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는 높은 기술력을 갖춘 거대 기업이 단기간에 탄생하고 있다. 산·학·연 연계가 원활해 생태계 확장이 빠르고, 유입되는 자본의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베이징대·칭화대의 교내 벤처 등도 세계적 수준의 휴머노이드를 개발한다. 2023년 칭화대 로봇 연구실에서 탄생한 스타트업 로봇에라는 지난해 8월 세계에서 장거리를 가장 빠르게 달리는 휴머노이드 ‘스타1’을 선보였다. 베이징대 주도로 2023년 설립된 스타트업 갤봇도 다리 대신 바퀴가 달린 휴머노이드를 공개했다.
중국에선 올해가 산업 현장에 휴머노이드가 투입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중국 대표 로봇 기업 유비텍은 폭스콘을 비롯한 고객사에 올해 납품하는 휴머노이드 ‘워커 S’ 시리즈가 500~1000대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16.3㎏의 하중을 버티는 워커 S1은 상품 분류, 부품 조립·검측 등 복잡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미 선전시에 있는 폭스콘의 부품 공장에 투입됐고, 다음 목표는 자동차 공장 ‘근무’다. 신제품 워커 S2는 작은 부품 조립에 특화돼 아이폰 조립도 가능하다.
유니트리도 65만위안짜리 고가 모델 H1을 산업 현장에 적극 투입하고 있다. 광저우자동차·비야디·샤오펑 등 자동차 회사들의 로봇과 샤오미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의 로봇도 산업 현장에 쏟아지고 있다.
베이징의 한 AI 전문가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정교한 동작 구현, 인간과의 원활한 상호작용, 충분한 배터리 수명 등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2023년 10월 발표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혁신 및 발전을 위한 지도 의견’은 2027년까지 세계 선두 수준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휴머노이드 전문 연구기관인 중국 리더연구원은 2029년 중국의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가 750억위안(약 14조8000억원)에 달해 전 세계의 3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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