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회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 진행자로 나선 방송인 코넌 오브라이언. /AFP연합뉴스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불 등의 여파로 제97회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은 예년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매년 진행자의 날카로운 풍자를 보는 재미가 있는 시상식으로 꼽히는 오스카지만, 올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을 언급하는 정치 풍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 시각) 오스카상 시상식 분위기에 대해 “정치에 대한 언급은 비교적 거의 없었다. 워싱턴은 먼 나라 같았다”고 평했다.

올해 진행을 맡은 건 토크쇼 등으로 유명한 방송인 코넌 오브라이언이다. 올해 처음으로 오스카를 진행한 그는 재치 있는 농담을 끊임없이 던지면서도, 트럼프 등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최대한 피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나온 정치 풍자는, 그가 작품상·감독상 등 5관왕에 오른 ‘아노라’를 소개하며 “누군가가 강한 러시아인에 맞서는 장면을 마침내 본 미국인들이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성노동자인 주인공 아노라가 러시아 갑부와 결혼한 뒤, 시부모로부터 동화 같은 결혼 생활을 위협당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오히려 압박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NYT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집무실 회담 논란으로 인한 여파를 처리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코넌은 오프닝 독백에서 분열적 정치만 언급했다. 워싱턴을 멀리하고 할리우드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했다.

이날 시상자, 수상자들 또한 정치적 언급을 피했다.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조 샐다나가 자신이 이민자 가정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단속을 에둘러 비판하고, 편집상 시상자로 나선 배우 대릴 해나가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란 표어를 말한 것 정도였다.

NYT는 “장편 다큐멘터리상 수상작 ‘노 아더 랜드’의 제작자인 이스라엘 언론인 유발 아브라함이 수상 소감을 한 것이 이날의 가장 정치적인 순간”이라고 했다. 이 영화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다룬 작품으로, 아브라함은 “여기 이 나라의 외교 정책이 그 길을 막고 있다. 세계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불의와 인종 청소를 중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