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이것이 우리의 정장이다"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지난달 28일 회담할 때 군복 스타일로 차려입고 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한 온라인 매체 기자가 “정장이 있긴 하냐”고 조롱 섞인 질문을 해 논란이 일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3일 이에 응대해 ‘우크라이나 국민에겐 우리의 정장이 있다(UKRAINIANS HAVE THEIR SUITS)’란 제목으로 사진 여덟 장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왼쪽부터) 러시아가 폭격해 무너진 건물에서 생존자를 찾는 구조대의 작업복, 피범벅 된 한 의사의 옷차림, 전선(戰線)의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입은 위장 전투복 등이 목숨 걸고 러시아와 맞서는 우크라이나의 ‘정장’이라는 뜻이다. 젤렌스키는 전장의 군인들과 연대(連帶)한다는 의미로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후 군복 차림으로 공식 석상에 참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인스타그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의 잠정 중단을 지시했다고 3일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이 보도했다. 지난달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담에서 종전 방안 등을 두고 언성을 높이며 싸운 지 사흘 만이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 지원에 의존해 전쟁을 치러온 우크라이나에는 치명적 악재다.

그래픽=양진경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이 매체들에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향한 진정성 있는 의지를 보여줄 때까지 군사 지원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미국·러시아가 주도하는 종전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전까지 군사적 지원을 보류하겠다는 뜻이다. 지원의 대가로 트럼프가 요구해온 이른바 ‘광물 협정’ 체결을 거부하는 젤렌스키에 대한 보복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자원 수익을 미국과 공유하는 내용의 광물 협정에 미국의 안보 약속이 없다고 반발하며 트럼프와 충돌했다. 미국의 지원 중단 방침은 젤렌스키가 3일 기자들과 만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합의는 아직 아주 멀었다”고 밝히고 트럼프가 이에 “최악의 발언이다. 미국은 더 참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직후에 나왔다.

그래픽=양진경

우크라이나가 지난 3년간 해외에서 받은 군사 지원은 1300억달러가 넘는다. 이 중 미국 비율이 절반 이상이다. 탄약, 방공망 시스템, 지대공(地對空) 미사일 등 전쟁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핵심 물자는 미국산(産) 의존도가 특히 커 지원이 끊기면 우크라이나군 전력은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월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미국의 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대가’를 요구하는 압박 외교를 펼치고 있다. 그는 3일 백악관에서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가 미국 내 반도체 설비에 10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자리에서 마약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4일부터 멕시코·캐나다에 관세 25%를 부과한다”고 했다. 중국에도 기존 10%의 추가 관세에 10%의 관세를 더 얹어, 총 20%의 관세를 더 매기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추가 관세들은 4일 0시 1분(미국 시각)부터 부과되기 시작했다.

◇美 손 떼면 전체 군사지원 반토막… 우크라 3개월 버티기도 힘들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부터 미국·유럽 등의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를 집계해 분석해 온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의 전면 침공 직전인 2022년 1월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군사·인도주의·금융 원조 등으로 약 1200억달러(약 175조원)를 지원했다. 이 중 약 670억달러가 무기 등 군사 관련이다. 유럽의 전체 지원 규모는 약 1386억달러로 미국보다 많지만, 군사 부문만 놓고 보면 651억달러로 미국에 못 미친다. 국가 단위로 보면 미국 다음으로 군사 지원 규모가 큰 독일과 영국이 각각 미국의 약 4분의 1 정도인 132억달러와 106억달러를 지원했다.

그래픽=양진경

미국이 등을 돌릴 경우 우크라이나는 군사 지원이 반 토막 나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대안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 중인 유럽·캐나다 등 다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지원을 두 배로 늘리는 방법이 있지만 재정적 여력이 크지 않은 이 국가들에는 과도한 부담이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0.5% 수준인데 유럽 국가들의 경우 이미 독일이 0.7%, 네덜란드가 1.0%, 덴마크가 2.4%에 달한다. 지난 2일 영국 런던에 모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지원을 약속한 유럽 국가 정상들이 “그래도 미국이 있어야 하니 트럼프와 화해하라”고 젤렌스키의 등을 떠민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군사 지원 중단으로 우크라이나가 당장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지는 않는다. 전쟁 초기와 비교해 우크라이나에 제공되는 무기 중 미국산 비율이 많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포병 전력에 핵심적인 곡사포의 경우 유럽의 비율이 78%에 달하고, 방공 시스템과 장갑차도 유럽산이 미국산의 약 두 배 규모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현재 전쟁에 필요한 각종 군사 물품의 약 절반을 자체적으로 생산·조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등은 “트럼프의 지원 중단을 우려해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올해 초 보낸 포탄과 각종 군사 물자 및 향후 유럽의 지원을 감안하면 당분간은 우크라이나가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질적으로 보면 미국의 지원 중단은 중·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전력에 큰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한 달에 약 30만발(포병 기준)이 필요한 우크라이나의 탄약 수요 중 여전히 미국을 통해 공급되는 탄약이 절반 이상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미국산 탱크·장갑차·다연장로켓 등에 사용되는 탄약 중 일부, 우크라이나에 지원된 방공 시스템 중 유일하게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요격 가능한 ‘패트리엇’ 등은 현재 미국만 공급 가능하다.

이코노미스트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군이 전선에서 작전을 펼치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 중에는 미국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3일 전했다. 예를 들어 러시아군의 전략적 목표물 공격에 폭넓게 활용되는 하이마스(HIMARS·고속 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와 여기에 쓰이는 에이태킴스(ATACMS) 등 장거리 타격 유도 무기의 경우 미군의 좌표 정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무인 정찰기와 인공위성을 통해 수집된 러시아군의 부대 배치 및 전술 이동 정보 또한 우크라이나군에 꼭 필요하다.

미국은 군사 지원 중단 방식에 대해 아직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미 언론에 따르면 일단은 항공 혹은 배편으로 우크라이나에 운송 중이었던 무기, 폴란드 등 제3국에서 인도를 기다리는 물자를 포함해 이미 우크라이나에 도착하지 않은 모든 군사 원조는 동결될 예정이다.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화해’에 실패해 미국이 군사 지원을 재개하지 않는다면 5~6월쯤엔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일부 영토를 점령한 러시아 쿠르스크를 비롯해 동부 도네츠크 지역, 남부 자포리자 등 격전지에선 탄약 등 보급 물자 감소와 이에 따른 사기 저하로 전세가 빠르게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선(戰線)이 무너지고 우크라이나군 사상자 수가 불어날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결국 트럼프가 젤렌스키에게 ‘더 많은 국민의 피를 흘리게 할지, 아니면 나에게 고개를 숙일지’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상황으로 몰아간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에서는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사이가 더 틀어지기 전에 관계 회복을 중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와 독일 디자이트 등 유럽 매체들은 “젤렌스키가 (미국의 지원에 대한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자원 수익을 공유하는) 광물 협정 체결 등 미국의 지시를 거부한 대가를 치르게 됐다. 유럽이 앞으로 우크라이나와 ‘짐’을 얼마나 나눠 질 수 있을지, 유럽 지도자들에게 어려운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