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영화 배우 진 해크먼이 배우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벳시 아라카와와 함께 뉴멕시코주(州) 샌타페이의 자택에서 지난달 26일 숨진 채 발견된 사건에 대해 현지 수사 당국이 7일 사망 원인을 발표했다. 사망 당시 해크먼은 95세, 아라카와는 64세였다. 사건 현장엔 반려견 한 마리도 사망한 채 발견됐다. 유명 배우의 집에서 발생한 기이한 죽음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현지 경찰은 부부의 시신이 서로 다른 방에서 발견된 점, 반려견 세 마리 중 한 마리만 죽은 점 등 수상한 정황이 드러나자 범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에 착수했지만 결국 질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결론이 났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뉴멕시코주 수사 당국은 이날 “부검 결과 해크먼은 고혈압과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그는 생전 중증 알츠하이머(치매) 증상을 앓고 있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배우자 아라카와에 대해선 “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했다. 한타바이러스는 쥐 등 설치류의 배설물을 통해 전파되며 발열·구토 및 호흡 곤란 등을 일으킨다. 뉴멕시코에서 지난 5년간 한 해 1~7건의 감염 사례가 보고될 정도로 드물지만 약 40% 정도가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인 질병이라고 NYT는 전했다.
수사 당국은 부검 결과 및 보안 카메라 등에 찍힌 부부의 활동 기록 등을 토대로 아라카와가 지난달 11일쯤 먼저 세상을 떴고, 해크먼은 약 한 주 뒤인 18일쯤 숨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해크먼은 중증 알츠하이머를 앓아 아내가 숨진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수사 당국은 설명했다. 발견 당시 아라카와의 시신은 손발이 미라화(化)돼 있어 사망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신 근처의 조리대 위에선 열린 약병과 흩어진 알약이 발견됐는데, 이 약은 사인(死因)인 한타바이러스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밝혀졌다. 에이든 멘도사 샌타페이 보안관은 “아라카와가 지난달 11일 식료품점·약국에 간 모습이 보안 카메라에 찍혔다. 오후 5시 15분 자택으로 돌아왔고 그날 이후 이메일에 응답하지 않아 사망 시점을 그즈음으로 파악했다”고 전했다.
배우자가 세상을 뜬 집에서 한 주간 생활한 해크먼은 머드룸(젖거나 더러워진 옷‧신발 따위를 벗는 방)에서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자택 관리인이 아무도 응답하지 않아 경찰에 신고해 발견됐을 당시 해크먼은 옷을 모두 입고 있었고 주변에선 선글라스와 지팡이도 발견됐다. 수사 당국은 부검 결과 해크먼이 앓고 있던 심각한 심장 질환과 중증 알츠하이머의 영향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부부가 키우던 개 한 마리는 아라카와의 시신으로부터 3m가량 떨어진 욕실 벽장 안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나머지 두 반려견은 생존해 있었다. NYT는 뉴멕시코 수사 당국의 발언을 인용해 “아직 부검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해크먼 부부가 사망한 후 발생한) 탈수나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1930년 태어난 진 해크먼은 40년 동안 1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프렌치 커넥션’(1971)에서 무뚝뚝하고 거친 형사 지미 포파이 도일을 매력적으로 연기해 아카데미상(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 역할로 단숨에 스타가 되며 1970년대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배우”로 불렸다. 1993년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악랄한 보안관 역으로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한국엔 1978년작 ‘수퍼맨’에서 악당 렉스 루터 역할을 열연하며, 수퍼맨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리브 못지않게 유명해졌다. 한 차례 이혼한 해크먼은 1991년 아라카와와 재혼한 후 34년간 함께 살았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언제 받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 수년 동안은 집에서 나오지 않고 은둔 생활을 했다고 알려졌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 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 ☞ 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