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카니 전(前) 캐나다 중앙은행, 영란은행 총재가 9일 신임 캐나다 총리 겸 자유당 대표로 선출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54) 총리의 뒤를 이어 캐나다를 이끌 차기 총리 겸 자유당 대표에 정통 경제학자 출신 마크 카니(60) 전(前) 캐나다 중앙은행 및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총재가 선출됐다. 집권당인 캐나다 자유당은 이날 자유당 당원 15만 명 이상이 무기명 투표를 한 결과 카니가 85% 이상의 득표율로 경쟁자였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8%), 카리나 굴드 전 하원 의장(3.2%), 프랭크 베일리스 전 하원의원(3%)을 누르고 당선됐다고 9일 밝혔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엄청난 득표율을 보이며 당선됐다”고 했다. 캐나다에서는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겸한다.

카니는 글로벌 무대에서 정통 경제학자로 잘 알려졌지만 중앙 정치 무대에는 몸담아 본 적이 없다. 로이터는 “정치적 배경이 없는 외부인이 캐나다 총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불붙은 양국 간 관세 전쟁을 경험한 캐나다인들이 경제에 강한 카니를 택해 현재 불어닥친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캐나다·영국 중앙은행 총재 출신 정통 경제학자

카니는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이 나라(캐나다)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로 만들었는데 이제 우리의 이웃이 우리를 차지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럴 수는 없다”면서 “누가 캐나다를 위해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느냐”라고 했다. 1965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카니는 국제 경제 무대에서 이름을 떨친 경제학자다. 1988년 하버드대(경제학)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직에 입문하기 전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13년간 런던·뉴욕·도쿄 등을 다니며 일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8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맡으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캐나다 경제는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2.8% 성장했지만, 2010년 3%대 성장으로 복귀했고, 2011~2012년엔 위기 이전 수준인 2% 내외의 성장을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카니가 중앙은행 총재로 성공적인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의 실력을 인정한 영국에서는 카니를 기용하기 위해 삼고초려 했고, 연봉도 전임자의 3배를 주면서 2013년 7월 영란은행 총재 자리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는 2020년까지 첫 외국인 출신 총재를 지내며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전후 혼란스러웠던 상황에 적절히 대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캐나다 자산운용사인 브룩필드 자산운용 회장이자 블룸버그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다. 이날 투표에 참여한 자유당원들도 카니의 경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 샀다. 캐나다 여론 조사 기관 앵거스 리드에 따르면 최근 여론조사에서 캐나다인들은 카니가 보수당 대표 피에르 폴리에브보다 관세 및 무역 문제에서 트럼프를 상대하기 더 능숙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영국 BBC는 “트럼프에 맞서 캐나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선거의 핵심 질문이었다”고 했다.

9일 신임 캐나다 총리로 선출된 마크 카니가 가족들과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정치 경험은 없어, 美 관세 위협 넘어야

카니는 젊고 진보적인 정치를 추구한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뒤를 이어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자유당 대표 겸 총리가 됐지만 그의 앞날이 평탄한 것은 아니다. 당장 다음 달 2일로 연기된 미국 정부의 25% 관세와 야당의 정치적 공세를 감당해야 한다. 캐나다 유력지인 토론토스타에 따르면 카니는 이달 17~18일 무렵 총리 자리에 정식으로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캐나다에 대한 관세 유예 방침을 밝힌 뒤에도 “캐나다가 목재와 유제품에 대한 관세를 없애지 않으면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긴장은 계속 고조되고 있다. 카니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그에 대응해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는 트뤼도 정부의 입장에 서 있다. 이 때문에 양국 간 관세 전쟁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지난달 CNN과 인터뷰에서 “자랑스러운 독립국인 캐나다가 미 행정부 고위 인사들로부터 여러 차례 모욕을 당했다”고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카니가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지며 캐나다 정계가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놓을 가능성도 있다. 예정대로라면 다음 총선은 오는 10월에 치러야 한다. 현재 자유당은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는데, 조기 총선을 통해 추진력을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이 나온다. 트럼프의 관세 위협 이후 자유당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뉴욕타임스(NYT)는 “피에르 폴리에브가 이끄는 보수당은 오랫동안 여론 조사에서 자유당보다 20%포인트 이상의 격차를 유지하며 앞서왔지만 트뤼도의 사퇴 발표 이후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고 했다. 보수당에서는 내각 불신임안 제출 카드도 만지작 대고 있다. 로이터는 “차기 총리는 캐나다에 대한 관세를 위협하는 트럼프와 협상을 해야 하며, 조만간 총선에서 야당인 보수당과 맞붙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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