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 시절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벌어진 비인도적 살상 범죄 혐의로 로드리고 두테르테(80) 전 필리핀 대통령이 체포됐다.
필리핀 대통령실은 홍콩에서 귀국하던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11일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체포해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이날 아침 인터폴을 통해 발부한 두테르테의 체포 영장을 필리핀 당국이 집행한 것이다.
오는 5월 필리핀 중간선거에서 고향 다바오의 시장직에 출마할 계획이었던 두테르테는 지난 9일 홍콩 완차이구에서 열린 필리핀 이주 노동자 행사에 등장해 선거 유세차 연설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ICC가 체포 영장 발부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최근 잇따르면서 두테르테가 당분간 홍콩에 머무르며 체포를 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그는 자진해서 귀국했다. 홍콩 연설에서 두테르테는 “(체포가)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며 “내게 죄가 있다면 필리핀 국민들이 조금이나마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내 모든 것을 바친 것뿐”이라고 했다.
두테르테는 2016년 7월 취임하자마자 필리핀의 마약 문제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마약 소탕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력을 동원해 마약 사범을 무력 제압하고 처형을 일삼으면서 다수의 사망자를 내 국제사회에서 지탄받았다.
필리핀 정부는 2022년 두테르테의 퇴임까지 약 62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ICC는 사망자가 많게는 3만명에 달하며, 이 중에는 마약 유통·사용과 관련된 증거 없이 살해된 사례도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ICC가 2018년 이 문제에 대한 예비 조사에 착수하자 당시 두테르테가 집권 중이던 필리핀은 이듬해 ICC에서 탈퇴했다. 이후 ICC는 꾸준히 두테르테의 범죄를 입증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했지만 번번이 필리핀 정부의 조사 중단 요청에 가로막혔다. 딸 사라 두테르테가 2022년부터 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어 필리핀 정부는 그간 두테르테 체포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ICC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현 대통령이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정책을 뒤집으면서 마르코스·두테르테 가문의 갈등이 깊어진 데 따른 변화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재임 1965~1986년)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을 러닝메이트로 내세워 2022년 대선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두 가문의 정치적 동맹이 무너지면서 두테르테 부통령은 공공자금 유용 혐의로 지난달 5일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돼 오는 6월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다. 두테르테는 재판 결과에 따라 최대 종신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고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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