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인플루언서가 호주에만 사는 보호 대상 동물인 웜뱃을 어미에게서 강제로 빼앗아 드는 모습의 영상을 올려 호주에서 분노 여론이 들끓고 있다. 호주 정부까지 인플루언서의 이민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대응에 나섰다.
13일 로이터통신과 호주 ABC 방송 등에 따르면, 토니 버크 호주 내무부 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웜뱃 영상을 올린 미국인 여성 인플루언서 샘 존스의 비자 규정 위반 여부 등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존스는 인스타그램에서 약 9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했으며, 스스로를 ‘야외 활동 애호가이자 사냥꾼’이라고 소개한다.
웜뱃은 호주에만 사는 유대류(캥거루처럼 주머니를 가진 포유류) 동물로, 호주 법에 따라 보호된다. 작고 둥근 귀와 짧은 꼬리 등 귀여운 외형으로 호주의 마스코트 동물 중 하나로 꼽힌다. 야생 웜뱃을 포획하거나 해치는 건 불법이며, 일부 보호구역에서만 사육이 가능하다.
문제의 영상을 보면, 존스는 호주의 한 도로 옆 들판에서 돌연 새끼 웜뱃을 잡아 들곤 카메라 쪽으로 달려와 웃으며 “아기 웜뱃을 잡았다”고 말했다. 갑자기 새끼를 빼앗긴 어미가 뒤쫓아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새끼를 들어 보였다. 존스는 새끼 웜뱃이 몸부림치고 ‘쉿쉿’ 소리를 낸 뒤에야 새끼 웜뱃을 가장자리 아스팔트 위에 도로 놓아줬다. 존스가 영상 설명에 “새끼와 어미는 숲으로 함께 돌아갔다”고 적었지만, 영상에 실제로 새끼와 어미가 다시 만나는 장면은 담기지 않았다.
이 영상은 존스의 추방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 1만 명 이상이 서명할 정도로 호주 국민의 공분을 샀다.
동물단체와 정부도 비판에 나섰다. 국제 비영리 단체인 세계동물보호협회는 호주 정부에 존스의 동물복지법 위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달라고 요구했다. 호주·뉴질랜드 지역 책임자인 수전 밀소프는 “호주 국민들은 이 영상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며 “단순 콘텐츠 제작을 위해 가해진 동물 학대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야생동물 보호단체 ‘와이어스’ 소속 수의사인 타니아 비숍은 “웜뱃 앞다리를 붙잡고 들어 올리는 방식만으로도 어깨와 관절 부위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며 “새끼를 거칠게 데려가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부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끼 웜뱃은 어미를 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이 영상은 정말 충격적”이라고 했다.
페니 웡 외무부 장관은 “비자 취소 여부는 내무부 장관에게 맡길 것”이라면서도 “제발 웜뱃은 가만히 내버려 둬라”라고 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도 “이건 정말 충격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존스를 향해 “웜뱃 대신 어미 악어에게서도 한번 새끼를 빼앗아보지 그러냐”라고 비꼬았다.
이 같은 비판에 존스는 “새끼를 약 1분 정도만 조심스럽게 안았다가 다시 돌려줬다”며 “나는 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다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부정적인 반응은 이어졌고, 존스는 영상을 삭제한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존스가 아직 호주에 머물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토니 버크 내무부 장관은 “존스가 다시 호주 입국 비자를 신청하더라도 엄격한 심사를 받을 것이므로 굳이 신청할 것 같지 않다”며 향후 그의 입국을 사실상 막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호주에서 그녀를 다시 볼 일이 없길 바란다. 그녀가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