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백악관 정상회담 파국으로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갈등이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외교·안보 고위급 회담을 열어, 중단했던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 제안한 30일 잠정 휴전안을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28일 정상회담 당시 언쟁의 원인이 된 우크라이나 광물 협정도 되도록 빨리 체결키로 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이날 9시간에 걸친 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이런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2022년 2월 발발한 전쟁의 휴전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공동성명은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의 항구적 평화 회복을 위한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이를 수용하고 이행하는 조건으로 즉각 30일 일시 휴전(연장 가능)을 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미국·우크라이나가 일단 ‘휴전에 동의했다’며 이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휴전을 압박한 셈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일시적 휴전이 아닌, 점령지 러시아 할양을 전제로 한 영구적 종전 협상을 요구해 왔다.
미국은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보 공유 중단을 즉시 해제하고, 안보 지원 역시 재개한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정보 공유는 이날 저녁 즉각 재개됐다. 트럼프는 “젤렌스키를 백악관에 다시 초대하겠다”고도 말했다.
◇젤렌스키 “휴전에 동의” 트럼프 “백악관 다시 초대”
우크라이나는 당초 해상 전투 및 공습 중단만 하는 제한적 휴전안을 내놨다가, 회담 과정에서 미국이 ‘연장 가능한 30일간의 전면적 휴전’으로 제안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과 균열을 드러내 (협상과 전쟁 모두에서) 우위를 잃어버린 젤렌스키 대통령이 휴전안에 동의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평했다. 공동성명은 “(이 과정에서) 양국 간 포로 교환과 민간인 억류자 석방, 러시아에 강제로 끌려간 우크라이나 어린이 송환 등 인도주의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인질과 수감자를 교환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하마스(이슬람 무장 단체)의 휴전과 유사한 방식이다.
성명에는 “미국은 러시아에 상호주의가 평화 제안의 열쇠라는 점을 전달하겠다” “협상팀을 지명하고, 우크라이나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협상을 즉시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그 구체적 제안을 러시아 대표와 논의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러시아가 휴전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미국이 압박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종전 및 전후 안보 협상을 미국이 주도해 이끌겠다는 의미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회담 후 “이제 공은 러시아 쪽으로 넘어갔다. 만약 그들이 ‘노’라고 답하면 우리는 평화의 방해물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곧 외교 당국자를 급파해 러시아에 휴전안을 전달할 예정이다. 당장 스티브 위트코프 백악관 중동 특사의 모스크바 방문이 유력하다고 알려졌다.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트럼프는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It takes two to tango)”는 미 속담을 인용하고 “미국과 러시아 당국자가 11일이나 12일에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 때 서명하려다 회담 파국으로 체결 못 한 광물 협정과 관련해서 “양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장기적 번영과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중요 광물 자원 개발을 위한 포괄적 협정을 가능한 한 빨리 체결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또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유럽 파트너들이 평화 절차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는 언급도 나왔다. 우크라이나는 광물 협정과 관련해 미국의 안보 약속이 없다는 점에 불만을 제기해 왔으나, 이번 성명에도 이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날 공동성명은 지난달 28일 트럼프·젤렌스키가 정상회담 도중 설전을 벌이며 충돌한 지 11일 만이다. 생방송된 회담 마지막 10분간 벌어진 두 정상의 언쟁으로 정상회담은 파국을 맞았고, 이날 예정됐던 광물 협정 체결 역시 무산됐다. 이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과 군사 원조를 모두 잠정 중단하는 사실상 보복에 나선 뒤 양국 관계는 빠르게 식어갔다.
결국 정상회담 후 나흘 만인 4일 젤렌스키가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이 담긴 친서를 보내 양국 갈등은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트럼프는 이날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편지를 보내줘 고맙다”고 했다. 이어서 7일 위트코프 백악관 중동 특사가 “사우디 제다에서 우크라이나와 고위급 회담을 여는 방안을 조율 중”이라고 발표했다.
유럽 국가들의 화해 중재 노력도 양국 갈등 수습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지난 2일 유럽 안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런던에 모인 유럽 정상들은 회담장을 찾은 젤렌스키를 따뜻하게 감싸며 응원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유럽 중심의 종전 협상안 마련에 나섰고, 유럽 각국에선 ‘자강론’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미국과 잘 지내야 한다”고 젤렌스키의 등을 떠밀었다.
유럽과 우크라이나가 빠르게 밀착해 미국과 맞서는 듯한 구도는 트럼프로서도 달갑지 않았고, 결국 사과를 표명한 우크라이나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공동성명엔 “양국 대표는 국가를 지키려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의회, 미국 국민에게 우크라이나 국민이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거듭 강조했다”는 등 악화한 양국 여론을 달래고 갈등을 봉합하려는 표현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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