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한 영어유치원에 주차된 통학버스. /연합뉴스

국내 6세 미만 영유아의 약 절반이 사교육을 받는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온 가운데, 외신이 한국 영유아 사교육 시장 과열 실태를 조명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 “한국의 학문적 경쟁이 6세 미만의 절반을 입시 학원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한국의 영유아 사교육 시장 실태를 보도했다. FT는 ‘학원’(hagwon)을 한국어 발음 그대로 소개하면서 “영어, 수학, 과학, 글쓰기 등의 과목에서 수업을 제공하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매우 큰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고도 덧붙였다.

FT는 한국의 6세 미만 영유아 중 절반에 가까운 47.6%가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는 지난 13일 한국 교육 당국의 통계를 인용한 뒤 한국의 과한 사교육비 지출이 출산율 저하와 가계 부채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고 짚었다. FT는 “부모들은 자녀가 명문대 진학과 대기업 취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며 “이러한 학업 경쟁은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위기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합계출산율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교육비 증가가 노후 빈곤에도 영향을 준다고 전문가 인터뷰를 인용해 보도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젊은 부모들은 자신들이 학원 교육을 통해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녀에게도 같은 교육 방식을 적용한다”며 “그러나 과도한 교육비 지출로 인해 부모들이 노후를 대비할 저축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한 공무원은 매달 가구 소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인 약 250만원을 자녀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사교육 폐지를 목표로 활동하는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천은옥 연구원은 매체에 “이건 단순히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시스템적인 문제”라며 “자녀가 학업적·경제적 불평등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현상이 사교육 경쟁을 악순환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13일 영유아 사교육비 실태 조사 결과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작년 7~9월 만 6세 미만 영유아 가구 부모 1만32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로, 전체 사교육 참여율은 47.6%인 것으로 조사됐다. 사교육비 총액은 8154억원이었으며,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이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사교육 참여율이 높아지고 비용도 늘어났다. 만 5세 어린이는 10명 중 8명꼴로 사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평균 사교육비는 43만5000원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학부모와 학원가에선 ‘4세 고시’ ‘7세 고시’란 말까지 유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세 고시는 ‘세는 나이’로 5세를 대상으로 한 유아 영어학원(영어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레벨 테스트, 7세 고시는 초등학교 입학 전 유명 초등 수학·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시험을 의미한다. 이런 4·7세 고시는 이후 ‘초등의대반’ ‘영재입시반’으로 이어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