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국가들에 아시아의 ‘질서 있는 선진국’으로 여겨졌던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30년 전 발생한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테러’는 주요국의 대(對)테러 정책 수립의 방향을 바꾸게 한 충격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전까지는 다이너마이트 등 폭탄류를 주로 사용해 ‘분리 독립’ 같은 명확한 요구 사항을 천명하려는 테러 집단이 주를 이뤘고 사린가스 테러처럼 광신적 종교 집단이 철저한 준비를 거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대량 살상을 시도한 테러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마사 크렌쇼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은 한 세미나에서 “사건 당시 빌 클린턴 정부는 사린가스 테러에 크게 놀랐고 이는 화학·생물·방사능·핵무기 등을 악용한 이른바 ‘CBRN(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nuclear)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미국 정책 연구소인 ‘외교협회(CFR)’의 제임스 린지 전 수석부회장은 CFR에 올린 영상에서 “(사린가스 테러는) 한때 정부만이 할 수 있었던 대규모 공격을 민간 단체도 수행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고 했다.
옴진리교가 당초 사린가스가 아닌 핵무기를 이용한 테러를 계획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의 핵 비확산 대상이 ‘국가’에서 ‘테러 단체’로 수정됐다는 분석도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전직 요원으로 CIA 시절을 회고한 책 ‘페어 게임’ 등을 쓴 밸러리 플레임은 한 세미나에서 “사린가스 테러 발생 후 CIA 내부에서 처음으로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경각심이 커졌다. 이는 CIA 역사상 최초로, 대규모 살상 무기 비확산 전담 부서가 신설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사린가스 테러 6년 후인 2001년 미국 뉴욕에서 이슬람 테러 단체에 의한 ‘9·11 테러’까지 발생하면서 주요국은 무차별 테러를 예방하기 위한 감시를 강화하게 된다. 크렌쇼 연구원은 “어렵지 않게 구하는 재료로 일반인이 테러를 단행할 수 있음이 증명되고 이후 9·11 테러로 많은 일반인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한 ‘감시 사회’의 문이 열리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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