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햄튼(East Hampton)은 미국 뉴욕시의 오른쪽에 위치한, 대서양을 향해 가로로 뻗은 롱아일랜드에서도 가장 동쪽에 위치한 최고급 휴양지다. 배우 러셀 크로우, 제인 폰다, 사라 제시커 파커, 영국 축구 선수 출신인 데이비드 베컴,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가족, 가수 머라이어 캐리 등 미국의 유명인사들과 부호들이 이곳에 별장을 갖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이곳에 있는 초등학교인 아마간셋 스쿨은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110명에, 1년 예산이 무려 1100 만 달러(약 160억 원)인 부자 공립학교다. 동네 평균 집값이 300만 달러(약 43억5000만원)이다.

25달러짜리 기프트카드 도난 사건으로, 교장이 정직되고 아직도 진범을 찾기 위한 소송이 진행 중인 아마간셋 초등학교

그런데 이 초등학교에서 2023년 말에 발생한 25달러짜리 아마존 기프트카드(gift card) 도난 사건이 지금껏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에서 ‘도둑’으로 몰린 교장은 유급휴가 조치를 당했고, 마을 주민과 교사들, 학부모들은 계속 진범을 놓고 쪼개져 논쟁 중이라고, 지역지인 이스트햄튼스타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보도했다.

사건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며칠 앞둔 2023년 12월 15일 오전에 시작했다. 학부모 한 명이 학교 안내 직원인 캐시 버츠에게 두 장의 25달러짜리 아마존 기프트카드를 맡겼다. 한 장은 버츠에게, 또 다른 하나는 이 학교의 계약직 작업 치료사인 크리스 매컬로이에게 주는 것이었다. 버츠는 매컬로이의 우편함에 이 기프트카드가 담긴 빨강 봉투를 넣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늦게 매컬로이가 자신의 우편함을 살폈을 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버츠는 교장 마리아 도어에게 ‘도난 사실’을 알렸지만, 도어 교장은 “학교에선 늘 뭐가 없어졌다가도 며칠 지나 저절로 나타나기도 하니까, 좀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러나 사라진 봉투는 발견되지 않았다. 며칠 뒤 우편실을 비추는 CCTV 카메라에 녹화된 화면을 확인해 보니, 오전 8시24분에 안내원 버츠가 빨간색 봉투를 들고 들어갔다가 7초 뒤 빈손으로 나오고, 이어 8시37분 도어 교장이 들어갔다가 10초 뒤에 나왔다. 그의 손에는 빨간 봉투가 들려 있었다.

25달러짜리 기프트카드를 훔쳐간 혐의로 정직 처분을 받은 마리아 도어 교장

2015년부터 이 학교 교장으로 재직한 도어는 “직무 수행과 대인 관계에서 가장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갖춘 모델”로 교육청 평가를 받았다. 또 학교를 우수성적학교(Blue Ribbon)로 끌어올렸다는 표창도 받았다.

도어 교장은 자신의 손에 있던 빨간 봉투는 한 학부모 가정에서 준 셸 주유권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 내에서 온갖 흉흉한 얘기는 잦아지지 않았고, 이 지역의 임시교육감인 리처드 뢰슈너는 작년 1월 22일 도어 교장을 정직 조치했다. 도어 교장은 자신이 받았다는 ‘셸 주유권’이 담긴 빨간 봉투를 제출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도어 교장은 정직 처분을 받자, 정식 재판을 요청했다.

그렇게 시작한 소송으로 작년 11월 말까지 10여 명의 학부모ㆍ교직원 등의 증언 등을 포함한 1400쪽의 자료가 작성됐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일간지인 이스트햄튼스타에 따르면, 중재비용만 기프트카드 가치의 1000배인 2만5000달러를 넘어섰다. 또 교사에 대한 정식 징계 절차가 진행되면서 이 비용으로도 30만 달러가 쓰였다.

공교롭게도, 이 ‘도난 사건’은 도어 교장이 학교 내 일부 교직원들의 괴롭힘을 교육청에 신고하고, 자신이 차기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서한을 보낸 뒤에 발생했다. 학교가 분규에 휩싸이고 도어 교장이 정직되면서, 교육감엔 이 학교의 체육교사 마이클 로저스가 선출됐다.

도어 교장 측 변호사는 “원래 거짓말쟁이로 널리 알려진 안내직원 버츠(이후 은퇴)가 꾸민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체육교사 로저스가 자신이 교육감이 되려고, 임시교육감인 뢰슈너와 꾸민 음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시교육감 측은 “이 기프트카드가 어디로 갔는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며, 도어 교장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일부 교사들의 증언도 확보했다.

최고 부자학교에서 발생한 25달러짜리 기프트카드 도난 사건과 이로 인한 교장의 정직을 다룬 미 언론 매체들.

일부 학부모들은 미 언론에 교장 한 사람을 몰아내려고 학교 내 일부 집단이 사악하게 움직인 것이라고 말한다.

도어 교장이 정직된 사이에, 작년 7월 로저스는 연봉 21만 5000달러를 받는 교육감에 올랐다. 박사 학위와 수십 년의 행정 경험을 지닌 10여 명이 후보로 나섰지만, 로저스가 됐다. 그는 무상으로 머무는 관사(官舍)를 제공 받으면서, 햄튼에 있던 방 4개짜리 315㎡(약 101평) 주택을 187만5000달러(약 27억 원)에 팔았다.

도어 교장을 지지하는 학부모들은 여전히 “도어 교장이 교육감이 돼야 한다. 행정 경험도 없는 교사가 된 것은 죄악” ”교사 징계 절차에 들어간 30만 달러는 아이들 교육에 사용돼야 할 돈”이라고 비판했다.

한 학부모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별것도 아닌 25달러짜리 기프트카드에 이렇게 많은 일이 걸려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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