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차남 해리 왕자의 입국 기록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해리 왕자는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10대 시절 마약을 해본 적 있다고 털어놨는데, 미국 비자 신청 당시 이 불법 약물 사용 사실을 제대로 신고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다.
영국 공영 BBC방송은 17일 미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제기한 해리 왕자 비자 관련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칼 니컬슨 판사가 이같이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국토안보부는 18일까지 해리 왕자의 미국 입국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앞서 해리 왕자는 2023년 1월 출간한 자서전 ‘스페어’에서 과거 코카인, 마리화나 등 마약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17세 때 지인의 권유로 코카인을 해봤다고 밝히며 “그다지 재밌지는 않았고 주변 사람들처럼 특별히 행복해지지도 않았지만,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고 했다. 또 대마초도 해봤다면서 “코카인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마리화나는 달랐고, 내게 정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정착해 살고 있는 해리 왕자가 미국 비자 신청 당시 과거의 약물 사용 기록을 제대로 기재했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됐다. 미국 비자 신청서에는 현재 및 과거 약물 사용 여부를 묻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약물 관련 전력이 인정되면 미국 비자 신청이 거부될 수 있는데, 만일 해리 왕자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면 거짓 진술로 추방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약물 전력을 신고했더라도, 입국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이민국은 비자 신청자의 다양한 요인을 평가해 비자를 발급해줄 수 있는 재량권도 있다.
결국 미국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 재단이 이 같은 이유로 정보공개법에 근거해 국토안보부에 해리 왕자의 미국 입국 기록을 요청했다. 하지만 거부당했고, 재단은 소송을 제기했다. 칼 니컬슨 판사는 작년에는 해리 왕자의 입국 기록을 공개할 만한 공익적 필요성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가, 헤리티지 재단이 항소하자 이번에 공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입국 기록 공개 판결에 백악관과 해리 왕자 측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자 적법성에 문제가 제기된 해리 왕자의 비자를 취소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그를 추방하지는 않을 것이란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내버려 둘 것”이라며 “그는 아내 때문에 충분히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한편 해리 왕자는 2020년 왕실에서 공식 역할을 내려놓은 뒤 미국 국적의 아내 메건 마클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당시 해리 왕자가 어떤 종류의 비자를 받고 입국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