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안 협상을 위한 통화를 하고 30일간 에너지 기반 시설 등에 대한 상호 공격을 중단하는 ‘제한적 휴전’에 합의했다. 트럼프가 제안하고 푸틴이 받아들이는 형식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인한 전쟁 발발 이후 첫 교전 중단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러 양국은 보다 광범위한 휴전을 위한 협의를 중동에서 만나 계속하기로 했다. 하지만 푸틴이 ‘완전한 평화’의 조건으로 미국과 유럽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에서 민간인에게 잔혹 행위를 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향후 협상에 난관이 예상된다. 양국 정상 통화 직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까지 단행돼 “푸틴이 트럼프를 속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트럼프와 푸틴은 이날 오후 5시(모스크바 시간 기준)부터 약 두 시간에 걸친 긴 전화 통화를 했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은 통화 직후 언론 성명을 통해 “트럼프가 통화 과정에서 ‘분쟁 당사국들이 30일 동안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을 상호 중단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푸틴은 이 제안에 호의적으로 반응했고, 즉시 러시아군에 상응하는 명령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미국도 백악관 대변인 성명을 내고 “양국 정상이 전화 통화를 통해 전쟁이 지속적인 평화로 종결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평화로 가는 첫걸음으로 에너지 및 기반 시설에 대한 휴전, 흑해에서의 해상 휴전 이행을 위한 기술적 협상, 완전한 휴전 및 영구적 평화 추진 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푸틴과 대화가) 매우 좋았고 생산적이었다”고 썼다.
앞서 젤렌스키는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습 중단 및 해상 전투 중단을 골자로 한 휴전안을 제안했고, 미국은 지난 11일 우크라이나와 협상에서 이를 ‘30일간의 전면 휴전’으로 바꿔 다시 제안해 미·우크라이나 양국이 합의를 이뤘다. 러시아는 이 중 ‘30일 전면 휴전’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습 중단만 미국과 합의했다. 나머지는 추후 협상 대상으로 미뤄둔 셈이다. 푸틴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휴전안 자체는 지지하나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고 했었다.
미·러가 정상 통화 후 발표한 성명의 문구는 미묘하게 달랐다. 우선 휴전 대상에 차이가 있었다. 미국이 “에너지와 기반시설에 대한 휴전”이라는 표현으로 다양한 민간 시설을 포괄하는 듯한 표현을 쓴 반면 크렘린궁은 “에너지 기반시설”로 휴전 대상을 한정했다. 그러면서 미 성명에 없는 ‘30일간’이라는 표현을 강조했다. 백악관이 “완전한 휴전과 항구적 평화를 위한 기술적 협상을 중동에서 즉시 시작하기로 했다”고 한 반면 크렘린궁이 “양국 정상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합의를 달성하기 위해 양자 간 노력을 계속하기로 하고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다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점도 차이다.
백악관 성명이 227단어로 이뤄진 간결한 문서였던 데 반해 크렘린궁은 668단어(영문 기준)의 훨씬 긴 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엔 푸틴이 트럼프에게 요구한 사안이 보다 상세하게 담겼다. 크렘린궁 성명에 따르면 푸틴은 트럼프가 당초 제안한 ‘30일간 전면 휴전안’에 대해 휴전 감독의 어려움, 휴전 기간을 이용한 우크라이나군의 재정비 우려, 우크라이나에 대한 신뢰 부족 등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합의한 ‘전면 휴전’은 사실상 받아들일 수 없음을 밝혔다.
푸틴은 또 “정치·외교적 수단으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핵심 조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국 군사 지원 및 정보 제공의 완전 중단”이라고 강조했다고 크렘린궁은 전했다. 우크라이나를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천명한 유럽 국가들은 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 사항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푸틴은 타협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그의 목표는 여전히 ‘독립국 우크라이나’를 끝내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옛 냉전 시대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핀란드를 방문 중이던 젤렌스키는 일단 30일간의 제한적 휴전에 찬성 입장을 밝혔지만 “러시아가 공격 중단 약속을 지키고 미국이 보증을 서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성명 발표 수시간 만에 드론(무인기) 40여 대를 동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등을 공습하자 텔레그램을 통해 “푸틴이 사실상 휴전 제안을 거부했다. 전쟁을 질질 끌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유럽 국가들은 미·러 간 제한적 휴전 합의를 반기면서도 푸틴의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요구엔 반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독일을 방문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제한적 휴전은 우크라의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프랑스 동부 공군 기지도 방문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프랑스 공군력 강화를 위해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 주문을 늘릴 것”이라고 했다. 영국 총리실 역시 “우리는 러시아가 불법적 침공을 다시는 저지르지 못하는 데 필요한 만큼 우크라이나와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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