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광객들이 서울 중구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에서 기념품으로 김 같은 한국 특산품을 고르고 있다. 3월은 일본의 졸업 여행 시즌으로 비행 거리가 짧은 한국을 많이 방문한다. 그러나 일본인 6명 중 5명은 해외여행 기피로 여권을 갖고 있지 않다. /뉴스1

일본의 여권 파워는 세계 최상위급이다.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국가가 190국이다. 국제 법률회사 헨리파트너스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매년 전 세계 199국의 무비자 협정 체결 현황을 분석해 그 나라 여권의 파워를 가늠할 수 있는 ‘헨리 여권지수’를 발표한다. 이달 헨리 여권지수 1위는 193국가와 무비자 협정을 체결한 싱가포르였고, 일본은 190국으로 한국과 함께 2위였다. 덴마크·핀란드·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아일랜드가 189국으로 공동 3위다. 일본은 작년에도 여권 파워 세계 2위였다.

그래픽=김성규

이처럼 세계 최강의 여권을 얻을 수 있는 일본이지만 정작 일본 국민 6명 중 5명은 여권을 갖고 있지 않다. 일본 외무성이 지난달 발표한 일본의 여권 보유율은 17.5%였다. 2024년 말 기준 일본의 유효 여권은 2164만2351권에 그쳤다. 현재 일본 인구는 1억2375만명이다. 일본 국민 6명 중 1명만 여권을 소지하고 있고, 5명은 여권이 없다. 팬데믹이 종식되면서 일본에서도 신규 여권 발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그 증가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미미한 편이다. 일본의 작년도 신규 여권 발행 수는 382만1378권으로 전년 대비 8.3% 증가했다. 신규 여권 발행을 기준으로 하면 남성이 44.8%, 여성은 55.2%로 큰 차이는 없었다.

2023년보다 신규 여권 발행 수는 30만권 증가했지만,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신규 여권 발행 451만권에 비하면 70만권 정도 감소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일본의 여권 보유율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여권 보유율은 2013년 24%를 기록한 이후 2021년 20% 이하로 떨어졌고, 코로나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아 현재는 17.5%다. 유효 여권 수는 2022년 2175만권, 2023년 2150만권이었다.

일본 정부와 여행 업계에선 일본인의 여권 보유율이 해마다 떨어지는 이유로 우선 경제 문제를 들고 있다. 엔화 약세로 인해 여행 비용이 늘어나 해외여행을 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화 약세와 여행 국가의 물가 급등으로 인해 해외여행을 꺼리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같다”며 “유학 비용이 급등한 것도 낮은 여권 보유율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일본 국내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낮은 여권 보유율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작년 한 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은 3687만명이었지만, 해외로 출국한 일본인은 301만명에 그쳤다. 일본의 작년 출국자 수는 코로나 이전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일본 젊은이들의 해외 진출 기피도 낮은 여권 보유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일본 전문가들은 “베트남 등 아시아 신흥국들과 비교하면 젊은 세대가 해외에서 활동하겠다는 의식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젊은 학생들이 유학과 해외 취업 등으로 국제 감각을 익힐 기회가 감소함으로 인해 일본의 국제 경쟁력이 저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일본 국내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국제교육연구소에 의하면 미국 대학에 재적 중인 일본 학생은 약 1만4000명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22% 감소했다. 그만큼 일본 학생들이 유학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사립 대학의 교수는 “국내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도 있겠지만, 미지의 세계에 도전해 성취를 해보려는 도전 의식이 과거에 비해 저하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번역기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일본 학생들의 ‘영어 공포증’도 한국 등 다른 나라 학생들과 비교할 때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본여행업협회(JATA)는 일본의 낮은 여권 보유율을 우려하면서 한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했다. JATA는 “여권 보유율은 미국 50%, 한국 40%, 대만 60%, 독일 80% 이상”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한국과 독일에서는 해외여행은 물론 유학이나 해외 근무의 기회가 많기 때문에 여권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돼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한국의 여권 보유율이 40% 선이라고 분석했지만, 실제로는 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한국의 유효 여권은 3121만5077건이었다. 외교관이나 관용, 긴급, 여행증명서, 단수여권은 제외한 현황이다. 현재 한국 인구는 5168만명으로 한국의 여권 보유율은 60%였다. 국민 5명 중 3명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여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파악한 40%를 상회한 결과다. 코로나 이후 신규 여권 발행이 많이 늘어나면서 여권 보유율도 급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2019년 2871만명이었던 해외 출국자 수는 코로나 시기 급감했다가 2024년 2868만명으로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올해는 이를 크게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의 해외 출국자 수는 늘었지만, 한국 젊은이들의 해외 유학은 줄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한국 젊은이들의 해외 유학이나 취업 의지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면서 중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교육부가 공개한 ‘2024년 국외 고등교육 기관 한국인 유학생 현황’에 따르면 해외 대학에서 학위 과정을 밟거나 어학 연수를 하는 한국인 유학생은 2023년보다 3800명(3.1%) 늘어난 12만6891명이었다. 그러나 2017년의 23만9824명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해외 유학을 해도 취업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학업 기간이 늘어 취업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4만3847명으로 전체의 34.5%를 차지했고, 2위인 일본은 1만5930명이었다. 3위인 중국은 1만4512명이었다. 2017년만 해도 중국으로 유학 간 한국인 학생은 7만3240명으로 미국의 6만1007명보다 많았다. 코로나 종식 이후 미국과 일본으로 떠나는 유학생은 회복됐지만, 중국은 계속 하락세다. 젊은 세대의 반중 정서와 함께 미·중 무역 분쟁,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이 철수하는 것도 중국 유학 감소의 영향으로 꼽히고 있다.

여권 발급비 韓 5만원·日 16만원·美 24만원

2월 訪日 외국인 중 1위 한국… 중국·대만·홍콩·미국 순

일본의 여권 보유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높은 발급 수수료가 거론된다. 일본의 여권 발급 수수료는 1만6000엔으로 한화로 계산하면 15만7000원이다. 여권을 발급받는 비용이 일본이 한국보다 3배 정도 비싸다. 미국은 신규 여권 발급에 165달러(24만원), 갱신에는 130달러(19만원)를 받는다. 영국의 여권 발급 수수료는 82.5파운드로 15만원, 프랑스는 86유로로 13만원이다. 호주의 여권 발급 수수료가 가장 높은 편인데 325 호주달러, 30만원을 내야 여권을 받을 수 있다. 일본 여권 발급 수수료는 한국에 비해 3배 정도 높지만, 미국이나 호주에 비해선 낮은 편이다.

일본인이 해외에 나가지 않으려는 것에 비해 한국인은 일본을 너무 많이 찾고 있다. 올해 1월 일본에 간 한국인 입국자 수는 97만9042명으로 같은 시기 일본인 전체 출국자 수 91만2325명보다 많다. 일본에 간 한국인이 전 세계로 나간 일본인보다 많다는 의미다.

그래픽=김성규

지난 2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84만7000여 명으로, 전체 외국인 중 최다였다. 여행 비수기로 꼽히는 2월에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은 325만8000명이었다. 한국 다음으로는 중국(72만3000명), 대만(50만7000명), 홍콩(19만6000명), 미국(19만2000명) 순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올해 삼일절 연휴에는 2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항공편을 이용해 일본을 방문했다. 지난해 삼일절 연휴 이용객 21만509명과 비교하면 10.2% 증가한 것이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사흘간의 삼일절 연휴 당시(20만1467명)보다도 15.1% 많다. 공항별로 보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16만2235명이 일본으로 출국했고, 김포·청주·대구·김해·제주 공항을 통해 6만9721명이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