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 단체 하마스의 휴전 협상 파국으로 전쟁이 재개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극심한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사퇴를 요구하는 격렬한 반정부 시위 속에서 국내 안보를 책임지는 기관인 신베트의 수장이 전격 경질됐다. 여기에 얽혀 있는 네타냐후의 비리 의혹은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안보 위기 앞에서 내부 분열하지 않는다’는 이스라엘의 오랜 전통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내각은 21일 새벽 “로넨 바르 신베트 국장을 4월 10일 자로 해임하기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전날 밤늦게 시작한 회의가 세 시간 이상으로 길어지며 새벽까지 이어졌다. 신베트는 방첩과 각종 정보 수집, 요인 경호 등을 담당한다. 해외 정보를 담당하는 모사드와 함께 이스라엘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이다. 총리실은 “장관 총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임안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며 “후임자가 지명되면 예정보다 더 빨리 물러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네타냐후가 주도했다. 그는 지난 16일 “나와 신베트 수장 간의 신뢰가 무너졌다”며 경질을 시사했다. 21일 내각 회의에선 “바르 국장이 인질 석방 협상 과정에서 공격적이지 않고 물러터진 모습을 보였고, 계속 정보를 유출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바르 국장이 (전쟁의 도화선이 된) 2023년 10월 7일의 하마스 습격 가능성을 알고도 막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했다고 이스라엘 매체 채널12가 보도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분석된다. 네타냐후는 신베트가 이른바 ‘카타르 스캔들’ 조사에 뛰어들자 큰 불만을 갖게 됐다고 일간 하레츠 등은 보도했다. 네타냐후와 총리실 직원들이 카타르에서 6500만달러(약 951억원)에 달하는 정치 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다. 두 사람은 또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관한 책임 소재를 놓고도 격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두 사람의 정치적 대립이 사상 초유의 정보기관 수장 해임을 불렀다고 이스라엘 매체들은 전했다.
이스라엘 야당과 시민 단체들은 비난을 쏟아냈다. 최대 야당인 중도 우파 예시아티드(미래당)의 야이르 라피드 대표는 “네타냐후가 이렇게 한 이유는 오직 카타르 게이트 수사를 중단하기 위해서”라며 “현 정부는 정통성을 잃었다”고 했다. ‘더 나은 정부를 위한 운동’ 등 시민 단체들은 바르 국장 해임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네타냐후 퇴진 요구 시위를 더 강화해 가기로 했다.
앞서 20일에는 예루살렘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바르 국장 해임 시도 및 전쟁 재개에 반대하는 행진을 벌였고, 마지막에 총리 관저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저지당했다. 이 과정에서 물대포가 동원돼 야당 소속 의원 등 수십 명의 시위대가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강한 악취가 나는 ‘스컹크’ 액체도 분사해 논란을 불렀다.
네타냐후에 대한 여론도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은 “네타냐후가 금품 수수 의혹에 이어 전쟁 재개까지 나서자, 그간 높은 충성심을 보여온 예비군들마저 동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채널12의 긴급 여론조사 결과 이스라엘 국민의 51%가 바르 국장의 해임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네타냐후보다 바르 국장을 신뢰한다는 대답이 46%, 카타르 게이트 수사 때문에 바르가 해임됐다는 대답이 45%에 달했다.
한편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교전이 재개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소셜미디어에 “이스라엘은 하마스 테러리스트에게서 자국민을 보호할 모든 권리가 있다”며 “하마스가 남은 인질을 모두 석방했다면 휴전은 연장되었겠지만, 그들은 대신 전쟁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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