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미국 위스컨신주 매리네트의 한 조선소에서 미국 해군의 주력 호위함(frigate)인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급 한 척이 건조에 들어갔다. 적 잠수함과 미사일, 드론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첨단 무기가 장착됐다. 애초 진수(進水) 계획은 2026년. 그러나 미 해군의 설계 변경 요구가 계속 이어지면서, 준공까지는 9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신문은 각국의 방산(防産) 자료와 군사 컨설팅 업계의 분석을 토대로, 또 전세계 주요 국가들의 전함 건조 기간을 조사했다. 그 결과, 2007~2025년 10개국이 건조한 호위함 20척 중에서 한 척만 빼고 모두 미국이 디자인에서 준공까지 9년 예상하는 컨스텔레이션급(級) 호위함보다 짧았다.
한국과 일본은 3년 안에 건조했고, 미국은 7년, 중국은 5년 걸렸다. 호위함은 중형 전함으로, 대잠(對潛) 작전을 수행하고 대형 군함을 호위하는 역할을 한다.
또 보다 대형이고 강력한 무장을 갖춘 구축함도 같은 기간 미국은 두 척 건조에 7~8년 걸렸지만, 한국의 이지스 구축함인 정조대왕급함이 3년, 정조대왕급 2번함인 다산정약용함이 2년 걸렸다. 중국은 난창급 구축함이 6년 걸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4~2023년 기간에 중국 해군이 157척을 진수하는 동안에, 미국 해군은 67척에 그쳤다며, 이는 미국 해군의 과도한 설계 변경, 숙련된 미 조선업계 노동력의 부족, 노후한 조선소와 장비, 철강 가격ㆍ인건비 상승의 요인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 전함 수는 370척 이상, 미 해군은 295척이다.
미 해군의 목표는 2054년까지 전함 수를 390척까지 늘린다는 것이지만, 중국은 2030년까지 435척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미 해군은 질적(質的)인 면에서 중국보다 미 전함이 훨씬 우수하다고 주장한다.
◇완공까지 9년 걸리는 미 최신 프리깃함
미 컨스텔리이션급 구축함은 건조 기간을 단축하려고, 유럽 최대 조선사인 핀칸티에리(Fincantieri)의 검증된 설계 도면을 기본으로 했다. 이 도면으로 이탈리아ㆍ프랑스 구축함이 이미 진수됐다. 미 구축함이 건조되는 위스컨신 주 매리네트의 조선소도 핀칸티에리가 모기업이다.
애초 진수 목표 시점은 2026년. 그러나 건조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겨우 10% 공정만 진행됐다. 준공까지 예상되는 9년은 핀칸티에리 조선사가 같은 디자인의 전함을 걸리는 시간의 두 배에 달한다. 한 척 건조 비용은 처음의 13억 달러에서 이제 19억 달러(약 2조7844억 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미국 철강ㆍ알루미늄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수입산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 조선업체들이 사용하는 미국산 금속 가격도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미 해군은 이런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을 모두 20척 건조해 취역한다는 계획이다.
◇미 해군의 잦은 변경 요구로, 최초 설계 도면과 15%만 유사
건조 기간을 줄이려고 ‘검증된’ 설계도면을 이용했지만, 미 해군은 이후 컨스텔레이션급에 대해 수시로 변경을 요구했다. 미 의회예산국(CBO) 조사에 따르면 “애초 계획은 이탈리아 조선사의 원본 설계와 85% 유사한 함정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15%만이 유사하다”고 밝혔다.
더 큰 발전기를 수용하기 위해 선체 길이는 7.3m 더 길어졌고, 추진기 소음을 줄이기기 위해 프로펠러도 변경됐다. 건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컴퓨터 시스템과 무기, 다른 기능을 위한 냉각ㆍ환기 장치 공간이 추가됐다. 결국 애초 도면에 기초한 프랑스ㆍ이탈리아의 컨스텔레이션급 전함보다 중량이 10% 이상 늘었고 그만큼 속도는 줄었다.
미 해군의 조선사령부는 WSJ에 “미 해군은 외국 해군과 다른 표준을 갖고 있고, 종종 무기나 악천후로 타격을 받아도 전함이 더 ‘생존 가능할 수 있도록’ 더 정밀한 사항을 요구한다. 이런 차이로 무기 시스템이나 세부적인 변형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는 상당히 타당한 주장이긴 하다. 그러나 미 의회예산국은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국가 중에서도 미국의 무기와 군사기술, 핵 추진력이 가장 강력한 것도 여전히 사실”이라면서도 “2000년 초 6년 걸리던 공격 잠수함은 이제 9년 걸리고, 항모 건조는 8년 걸리던 것이 이제는 11년 걸린다”고 밝혔다.
◇상업 선박을 짓는 조선업이 부재하다 보니…
미국 조선업계가 직면한 고민은 기본적으로 상업용 조선업이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전함과 민간 선박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부품들에 대해 공급 체인을 공유할 수가 없고, 민군(民軍) 양쪽에서 쓸 수 있는 숙련된 노동력과 관련 원자재의 공급이 원활한 다른 조선 선진국들에 비해 전함 생산 능력이 딸린다.
예를 들어, 핀칸티에리의 미국 조선소는 직원의 1/3이 50세 이상이지만, 이탈리아 조선에선 그 비율이 40%에 가깝다. 그만큼 숙련된 인력이 많다는 뜻이다.
또 맥킨지 사가 작년 6월에 발표한 미국 조선소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수십년 된 금속 주조 기계ㆍ크레인ㆍ운반 시스템 등 수십 년 된 장비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고, 일부는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것들이다. 장비가 고장 나면 계약 이행이 지연되고, 일부는 더 이상 부품이 공급되지 않아서 교체 부품을 직접 새로 제작해야 하기도 한다.
트럼프의 철강 관세 전쟁이 지속되면, 미국 전함 건조에 들어가는 미국산 및 수입산 철강 가격은 또 오르게 된다.
미국은 2010~2021년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26억 달러가 들었지만, 제조 비용이 똑같이 높은 영국은 비슷한 잠수함 건조에 20억 달러를 썼다.
영국은 단일 조선소에서 만들 수 있었지만, 조선소의 규모와 수가 부족한 미국에선 900㎞ 떨어진 두 곳의 조선소에서 만든 잠수함 파트를 바지(barge)선으로 끌어와서 조립해야 했다.
F-35 전투기와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어시스템 등 미국 무기는 매년 전세계에서 주문이 쏟아지지만, 미국 전함이 유럽과 한국의 경쟁 전함들을 제치고 판매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영국 해군의 전 부제독 제러미 키드는 “미 전함은 강력한 전쟁 무기이긴 하지만, 건조ㆍ운영 비용이 매우 높다”고 WSJ에 말했다.
20년 전만 해도 중국의 해군력은 미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군함을 건조하면서 상황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미 해군, 30년간 매년 한국 국방예산만큼 전함 건조 써야
미 해군이 목표대로 2054년까지 전함 수를 390척으로 늘리려면, 미국 조선소들이 지난 10년 간 건조한 전함 수보다 훨씬 더 많은 함선을 건조해야 한다고, 2023년 1월 의회예산국 보고서는 밝혔다. 또 앞으로 30년 간 전함 건조 비용에만 매년 약 400억 달러(약 58조 원)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 해군이 애초 예상한 것보다 17% 더 많은 비용이다. 400억 달러는 우리나라의 전체 국방예산과 비슷한 액수다.
WSJ는 미 해군이 건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설계 변경을 최소화하고 이미 검증된 설계를 활용하는 방식을 적극 검토하며, 미국의 조선소 설비 업그레이드와 숙련공 양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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