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우크라이나, 미국·러시아가 23일부터 3일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각각 벌인 고위급 대표 회담에서 ‘에너지 시설 공격 금지’ 이행 방안을 모색하고, 흑해상에서 상선의 항행 안전을 보장하기로 했다. 해상 휴전에 사실상 합의하고, 에너지 시설에 대한 부분 휴전 실현에도 한발 다가선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25일 성명을 내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3국 간 합의 내용을 밝혔다. 성명에 따르면 교전 당사국(러시아·우크라이나)은 흑해의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고, 무력 사용을 배제하며 상선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자는 데 동의했다.
양국은 또 상대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상호 금지하기로 하고, 이행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및 해양 분야에서 합의 이행을 도울 제3국(미국)의 중재’를 양국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미국이 중재자로서 부분 휴전을 감시·강제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성명은 또 “미국은 전쟁 포로 교환과 민간인 억류자 석방, 강제 이주된 우크라이나 아동의 귀환을 지원하겠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도 밝혔다. 인도주의적 평화 절차의 실천에 대해서도 대략적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앞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30일간 중단하고 흑해에서 교전을 중단하는 부분 휴전 방안을 놓고 미국 중재로 실무 회담을 벌여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서로 마주하지 않고, 미국이 23일 우크라이나에 이어 24일 러시아와 회담하고 25일 다시 우크라이나와 회담해 양측 입장을 조율했다.
미국 백악관도 보도 자료로 합의 사실을 밝혔다. 이와 함께 “미국은 농산물 및 비료 수출을 위한 러시아의 세계 시장 접근을 복원하고, 해상 보험 비용을 낮추며, 이러한 거래를 위한 항구 및 결제 시스템 접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서방은 결제 시스템 차단 등을 통해 러시아의 농산물 수출을 어렵게 만들었는데, 이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도 성명에서 “(흑해 안전 통행 등의) 합의 사항은 러시아의 농산물·비료 수출에 대한 금융 제재가 해제되고 국제 결제 시스템(SWIFT) 연결이 복원된 뒤에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자국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과 회담에서 흑해 곡물협정 재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지만, 협정을 재개하려면 합의를 이행한다는 확실한 보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보증은 미국이 젤렌스키에게 (합의를 준수하라고) 명령해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흑해 곡물협정은 전쟁 중에도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의 안전한 수출을 보장하기 위해 2022년 7월 유엔·튀르키예의 중재로 체결됐다. 그러나 러시아는 협정 내용 중 러시아산 식량·비료 수출 보장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이듬해 협정을 파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