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BBC 최초의 만우절 방송. 주부들이 나무에서 스파게티를 수확하고 있다. /BBC

해마다 4월 1일이 되면 외국 언론사는 전혀 터무니없거나 근거가 거의 없는 이야기들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며 독자들과 농담을 즐기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1957년 영국 공영방송 BBC가 처음으로 내보낸 만우절용 방송이었다. 당시 BBC는 유난히 따뜻한 봄 날씨로 스파게티가 열리는 스위스 농장 이야기를 다뤘었다. 주부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스파게티 면을 수확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방송 이후 시청자들로부터 스파게티를 직접 키우는 방법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이 방송은 지금까지도 최고 고전 만우절 방송으로 꼽힌다.

2008년 BBC 자연 다큐멘터리 예고편으로 송출된 ‘하늘을 나는 펭귄’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남극대륙 인근의 킹조지섬에서 오랜 시간 펭귄을 관찰한 제작진이 하늘을 나는 펭귄을 목격했다는 콘셉트였는데, CG까지 적용된 영상에 많은 시청자가 속아 넘어갔다. 당시 제작진은 킹조지섬 날씨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펭귄들이 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그럴듯한 설정까지 덧붙였다.

펭귄이 하늘을 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내용의 만우절 방송. /BBC

하지만 요즘 외신에서 이런 만우절 농담성 보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여전히 한두 개 정도 올라오긴 하지만, 과거 같은 존재감을 갖지는 않는다.

가끔 외국 독자들이 가벼운 재미를 찾던 만우절 보도가 사라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유를 최근 들어 특히 세계적으로 화두에 오른 ‘가짜 뉴스’의 부상에서 찾았다.

영국 카디프대의 스튜어트 앨런 언론학과 교수는 1일 BBC에 “우리는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은 언론의 신뢰도가 편집국의 가장 중요한 고민 중 하나”라며 “전반적으로 뉴스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고 있는 시대에 만우절 기사가 언론의 신뢰를 건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런던 센트릭’이라는 언론사 편집자인 짐 워터슨도 이 같은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독자를 속이기 위해 가짜 뉴스를 내보내고, 나중에 농담이었다고 해명하는 건 평소 ‘진실’을 외치는 언론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며 “요즘은 만우절 기사가 전혀 재미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을 부정하며 이를 ‘가짜 뉴스’라고 몰아붙이는 세계 지도자까지 있는데, 언론이 정말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건 그들에게 빌미를 주는 셈”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 발전으로 뉴스가 맥락 없이 공유되기 쉬워진 점도 언론사의 만우절 보도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라고 BBC는 짚었다. 매체는 “과거에는 신문을 종이로 읽었기에 4월 1일에 발행된 기사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뉴스 기사가 언제든 공유될 수 있는 시대라서 수개월, 수년이 지나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특정 기사가 다시 퍼질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내용은 읽지 않은 채 제목만 보고 기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독자들이 기사 날짜까지 확인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여기에 몇 년 사이 널리 퍼진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부상도 또 다른 변수로 부상했다. 매체는 “AI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실제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의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했다.

/BBC

언론학 강사로 활동하는 비나 오그베보르 박사는 “만우절 농담 기사가 역효과를 낳아 독자를 화나게 하거나 언론사의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영국 웨일스의 스완지대 리처드 토머스 교수는 “1957년 스파게티 수확 보도는 그 시절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채널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지금처럼 다양한 뉴스 소스가 인터넷으로 즉시 제공되는 시대엔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토마스 교수는 “레거시 미디어가 대중과 장난을 칠 수 있었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면서도 “이와 별개로, 요즘처럼 즐거운 소식이 귀한 세상에선 만우절 농담 보도처럼 유쾌한 장난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