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이자, 극우 성향 정당 국민연합(RN)의 실권자인 마린 르펜 의원이 지난달 31일 유럽의회 보조금(약 47만유로, 7억원)을 사적 유용한 혐의로 징역 4년과 벌금 10만유로, 5년간 공직 선거 출마 금지를 선고받았다. 유럽 내 극우 정당 인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르펜의 2027년 대선 출마가 어려워지면서 향후 프랑스 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르펜은 RN을 창립한 고(故) 장마리 르펜의 딸로 유럽 극우 정치의 대중화를 이끈 인물이다.
파리형사법원은 이날 “르펜이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해 공직자로서 신뢰를 심각히 훼손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징역 4년 중 2년은 가택 구금 형태로 집행되며 나머지 2년은 집행유예 된다. 르몽드는 “르펜이 2027년 대선 출마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보도했다. 르펜이 대선에 출마하는 길은 선거 전까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는 방법밖에 없는데 시간이 2년밖에 남지 않은 데다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작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RN이 구심점을 잃어, 프랑스 내 극우 정치 영향력이 약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르펜은 “나는 이런 식으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며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는 “프랑스 민주주의가 처형당한 것”이라며 “대중의 의지가 법원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르펜 편을 들었다. 트럼프는 “많은 사람이 그녀가 무죄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유력 주자가 5년간 출마 금지를 당했다”고 했다. 유럽 극우 정당들을 지지해온 일론 머스크 미 정부효율부 수장, 러시아의 크렘린궁도 르펜을 옹호하는 논평을 냈다.
하지만 르펜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장 베네딕트 드 페르튀이는 “선출직 공직자들이 특혜를 받아선 안 된다”고 했다. FT는 “정치적 고려는 법원의 책임이 아니다”라며 “이번 판결이 정치적이라고 비난받는 현실은 서구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인 법치 존중이 얼마나 약화됐는지 보여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