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해고가 시작된 2일 미 보건복지부 직원들이 출입증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입구에 줄을 서 있다(왼쪽). 한 직원은 이 모습을 "드라마 '오징어 게임' 한 장면 같았다"고 표현했다. 오른쪽은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로봇 '영희'. /AFP 연합뉴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량 해고 칼바람으로 직장을 잃은 미 보건복지부의 공무원이 당시 상황을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비유했다.

2일 미 워싱턴DC의 지역 방송 WTOP에 따르면, 전날 아침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는 출근하기 위한 직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출입증 배지를 갖다 대고 입구를 통과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몇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기 때문이다.

출입증을 갖다 댔을 때 입구에 달린 전자등에 ‘초록불’이 들어오면 계속 일을 하게 됐다는 뜻이다. ‘빨간불’이 뜨면 그날로 해고였다. WTOP는 만우절에 벌어진 이 상황을 두고 “농담이 아니었다. 그들의 배지가 작동하지 않으면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인력 감축 작업에 따라 일자리를 잃었다는 뜻이었다”고 전했다.

2시간 동안을 기다렸다가 출입증을 확인한 후 빨간불을 보게 됐다는 한 직원은 “그것은 마치 ‘오징어 게임’ 같았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다. 카메라가 숨겨진 ‘영희’의 얼굴이 뒤를 돌았을 때 움직이지 않는다면 통과했다는 초록불이, 움직였다면 빨간불이 켜진다. 미국에서는 ‘레드 라이트, 그린 라이트(Red light, green light)’로 불린다.

이 직원은 “그것은 모욕적이었다”며 “빨간불이 뜬 뒤 내 짐을 챙기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는 누군가 동행해줘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전날 오전 5시, 이른 시간에 출근했다가 주차장에서 청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출입증이 작동하지 않아 해고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 상황을 “연방 정부 직원들을 고문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1일 미 보건복지부 직원들이 자신의 출입증 배지가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건물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WTOP와 인터뷰한 보건복지부 직원들은 지역사회의 정신 건강 및 약물 이용 문제를 다루는 부서에서 일했으며, 자신의 업무가 그동안 많은 생명을 구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 직원은 “우리가 곧 보게 될 것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하고, 가장 소외된 지역 사회가 제일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라며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다른 직원은 “이 나라에 봉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면서도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쉽게 해고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정부를 효율화하고 지출을 줄이겠다며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산하 기관인 식품의약국(FDA),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에서 대규모 해고를 단행했다. 보건복지부 소속 총 8만2000명 중 1만명이 해고됐고, 추가로 1만명이 정부효율부(DOGE)가 주도하는 ‘자발적 퇴직 프로그램’에 따라 부서를 떠날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통해 연간 18억 달러(약 2조6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식품의약품 안전과 공중보건 분야의 핵심 인력이 대거 감원되면서 미국의 보건 비상사태 대응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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