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와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글로벌 금융 시장은 일제히 하락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모든 국가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고 주요국들이 보복 조치를 시사하자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며 세계 주식 시장이 하락하고 있다. 트럼프는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인 한국에 대한 관세율을 9일부터 25%로 올리는 등 광범위한 관세 인상 조치를 2일 단행하면서 “미국의 제조업을 되살리고 일자리를 돌아오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 같은 관세 정책을 발표한 다음 날 미 주식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큰 폭으로 폭락했다. 세계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관세의 높은 장벽을 세운 트럼프의 반(反)자유무역 조치가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ke America Wealthy Again)’라는 그의 구호와 달리 미국 경제에 큰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크다고 시장은 판단한 셈이다.

트럼프가 사실상 모든 교역 상대국에 대한 관세 인상을 발표한 다음 날 열린 미국 증시에선 주요 지수가 일제히 폭락했다. 우량주 위주의 다우평균은 4.0%, 대형주로 구성된 S&P500 지수는 4.8%,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6.0% 내려가 이날 거래를 마쳤다. 증시 폭락으로 이날 하루 사이 뉴욕 증시에선 시가총액 3조1000억달러(약 4500조원)가 사라졌다. 코로나 팬데믹의 글로벌 확산이 확실시되며 시장이 공포에 휩싸였던 2020년 3월 16일 이후 가장 큰 손실이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그래픽=백형선

관세는 수입품을 사는 개인이나 법인이 내기 때문에 트럼프가 올린 관세는 미 기업·소비자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늘어난 관세가 물가에 전이될 경우 코로나 이후 극심했다가 간신히 진정된 인플레이션이 다시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무차별적이고 높은 관세는 외국산 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파는 미국 내 기업의 비용 부담도 늘어나게 해 수익성을 악화시킨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트럼프의 무차별적 관세는 미국에 본사가 있지만 인건비가 비교적 낮은 해외 공장에서 최종 조립 작업을 해 들여오는 미국 기업에 특히 큰 악재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표 테크 기업인 애플은 거의 모든 제품을 중국·인도·베트남 등 해외에서 최종 조립하기 때문에 이들 국가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들어오는 제품 가격을 불어난 관세 때문에 올리면 판매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로 나스닥 시총 1위인 애플 주가는 3일 9.3% 폭락했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10% 증가할 때마다 애플의 이익은 3.5%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2일 트럼프가 발표한 추가 관세의 결과) 관세율 54%를 적용받게 되면 1000달러짜리 아이폰 가격이 1300달러로 뛰게 된다”고 전했다.

이 와중에… 트럼프 "美 영주권 주는 골드카드 곧 출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개인 리조트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취재진에게 자기 사진이 들어간 '골드카드' 실물을 소개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는 '그린카드'로 알려진 미국 영주권을 500만달러(약 70억원)에 팔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이를 골드카드라고 불렀다. 이날 트럼프는 "골드카드가 2주 안에 출시될 것"이라며 "기대된다"고 했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 관세’가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에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이 시장에 번지면서 거의 모든 업종의 주가가 하락했다. 수입 부품을 많이 쓰는 미국 내 완성차 업계의 수익성 악화 우려에 3일 스텔란티스(9.4%)·GM(4.3%) 등 주가는 큰 폭으로 내렸다. 3일 0시 1분부터 이미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대해선 국가별 관세와 별도로 25% 관세 품목 관세 부과가 시작됐다.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 중국산 제품에 집중적으로 부과된 관세를 피하기 위해 생산 거점을 베트남·캄보디아 등 동남아로 옮긴 기업들도 영향을 받았다. 2일 트럼프가 발표한 상호 관세 부과 방침에 따르면 베트남·캄보디아엔 중국 다음으로 높은 수준인 46%, 49%의 상호 관세가 부과된다. 신발류의 50%를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나이키 주가는 3일 14.4% 하락했고 동남아 생산량이 많은 갭·언더아머 등의 주가도 각각 20.3%, 18.8% 내려갔다. 트럼프가 “반도체 품목 관세를 곧 부과하겠다”고 발언한 영향으로 엔비디아(-7.8%) 등 주요 반도체 기업 주가도 일제히 폭락했다.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이 전 세계 경기 침체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우려에 주요국 증시도 대부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닛케이평균은 3일 2.8% 하락한 데 이어 4일에도 2.8% 내려가 거래를 마쳤다. 유럽 대형주 지수인 유로스톡스50은 3일 3.6% 내려갔고 베트남 대표 지수인 VN지수도 전일 6.7% 폭락한 후 4일에도 1.6%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는 트럼프의 고율 관세로 올해 세계 경제 침체 확률을 40%에서 60%로 높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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