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유럽을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폭탄 앞에서 그간 경제와 안보, 인권 등을 두고 충돌해 온 유럽과 중국의 갈등 관계가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권인 미국의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경제 규모 2위 중국과 3위 유럽연합(EU)이 함께 반기를 드는 모양새를 보이면서다. 반세기 이상 자유주의적 세계 무역 질서를 이끌어온 미국의 ‘배신’에 유럽과 중국이 밀착하고, 전략적 연대가 전 세계로 번질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9일 “주변국과 상호 신뢰를 강화하고 공급망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며 미국과 벌이는 무역 전쟁에서 우군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지난달 22일엔 왕이 외교부장(장관)이 도쿄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국제 정세의 변화와 혼돈 속에서 경제 통합을 강화하자”며 한국과 일본에 손을 내밀었다.

그래픽=김성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8일 리창 중국 총리와 통화하고 “EU·중국 정상회담이 오는 7월 열릴 것”이라며 “양측의 수교 50년을 기념하는 적절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U·중국 정상회담 전망은 연초부터 나왔지만 대체적 일정이 공식 언급되기는 처음이다. 폰데어라이엔은 특히 “유럽과 중국은 미국 관세로 인한 세계적 혼란에 대응할 책임이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에 기반한 무역 시스템을 지원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픽=김성규

리창 총리도 “미국의 관세 부과는 전형적 일방주의, 보호주의이자 경제적 강압 행위”라며 “중국과 유럽은 경제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의 옹호자이자 세계무역기구(WTO)의 확고한 지지자로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무역 투자를 보호해 세계 경제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화답했다. 또 “유럽과 원활한 고위급 교류를 통해 정치적 상호 신뢰를 증진하며 실질적 협력을 확대하기 원한다”고 했다. 양측 관계를 적극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10~11일 중국을 찾는다”고도 발표했다. 산체스는 시진핑 주석도 만날 예정이다. 당장 “중국이 EU와 밀착해 미국 압박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과 ‘대서양 동맹’ 유지를 앞세워 온 EU 역시 미국에 대한 경고로 중국이 내민 손을 잡으려는 분위기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EU가 트럼프발(發) 무역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고 평했다.

EU와 중국 관계는 지난 수년간 악화일로였다. 폰데어라이엔은 2023년 5월 베를린 연설에서 “중국은 우리가 마주한 가장 큰 외교적 도전 과제”라며 중국을 상대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을 선언했다. EU는 이후 중국 전기차에 최고 38%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태양광·풍력 산업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다. 중국 기업의 유럽 철도 공사 입찰을 배제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의 대외 팽창 정책)에서 이탈리아가 탈퇴했다.

중국은 EU산 브랜디에 대한 반덤핑 조사, 유제품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에 착수하고 전기차 추가 관세를 WTO에 제소하며 강력 반발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5월 프랑스, 헝가리, 세르비아 등 유럽 내 친중 성향 국가만 순방하며 경제 협력 선물을 내놓는 ‘이간책’도 구사했다.

그러나 트럼프 관세 폭탄이라는 ‘공동 위협’ 앞에서 협력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프랑스 레제코와 독일 한델스블라트 등 유럽 경제지들은 “트럼프가 관세 전쟁의 고삐를 계속 조이면 반(反)트럼프 연대가 EU·중국을 넘어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중국 중심의 연대가 본격화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는 최근 관세 협상팀에 “협상에서 동맹을 우선시하라”며 한국과 일본, 유럽 등에 유화적 손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반대로 중국에는 50%의 추가 보복 관세를 포함한 총 104% 관세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에 맞서지 않고 협상한다”는 기조다. EU도 ‘강경 대응’에서 ‘협상 우선’으로 돌아섰다. EU는 15일부터 단계적 시행 예정인 대미 1차 보복 관세 규모도 260억유로(약 42조4000억원)에서 210억유로로 줄이고, 트럼프가 분노를 표한 미국산 버번 위스키에 대한 보복 관세도 취소하며 ‘빅딜’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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