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 각국에 부과한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전격 발표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관세는 125%까지 올렸다. 그런데 중국과 대화를 기대하는 모습도 숨기지 않았다.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시진핑 주석과 만날 것이고 그는 내 친구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존경한다”며 “그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좋은 거래를 원할 것”이라고 했다. 허융첸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10일 미국을 향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견을 적절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트럼프는 전날에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중국도 거래를 간절히 원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 일은) 곧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부과한 것과 동일한 폭의 추가 보복관세(50%)로 맞받아쳤다. 중국을 손봐주겠다고 큰소리치는 트럼프가 정작 중국과 협상에 매달리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면서 중국이 미국과 무역 전쟁을 하며 구축한 ‘내생경제(內生經濟)’가 위력을 발휘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가 1기 임기 2년 차이던 2018년 340억달러(약 50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도 같은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물리며 미·중 무역 전쟁이 불붙어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다. 이때 중국은 미국 의존도를 대폭 낮추고 내수 확대와 기술 자립에 주력했는데, 이 전략이 트럼프 2기에 재개된 미·중 무역 전쟁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1기에 불붙은 미·중 무역 전쟁은 2020년 1월 양측이 사실상의 휴전 협상인 ‘1단계 무역 합의’를 체결하고, 조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수그러들었다. 지난 1월 백악관에 돌아온 트럼프는 1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 높은 관세 폭탄을 퍼붓고 있지만 중국은 결연한 항전(抗戰) 의지 속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9일 각국에 대한 상호 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면서 중국에 대한 관세만은 125%로 올려 무역 전쟁의 전선을 좁혔고, 중국은 10일 오후 12시 1분(현지 시각)을 기점으로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84%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지구촌 1·2위 경제 대국인 미·중의 무역 갈등으로 양국의 상품 교역이 최대 80% 감소해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했다.
트럼프에 맞서는 중국의 최대 무기는 ‘낮은 미국 의존도’이다. 미국은 2018년부터 중국의 주력 수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등 공격을 가했고, 중국은 2년 뒤 국내·국제 경기를 모두 살린다는 개념의 쌍순환(2020년) 전략을 내놨다. 국내 분야에서는 민간 소비를 확대하고 수입 의존도를 낮춰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대외적으로는 향상된 기술력을 기반으로 첨단·고부가가치 상품의 수출을 늘리고, 수입도 증대해 내수 시장도 살린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미국 대신 아시아·유럽·중남미와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한국·일본·호주 등이 참여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과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 등에 집중했다. 그 결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의 비율은 지난해 33%로 2005년(65%)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국의 무역 의존도가 88%(2023년)에 달하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치(59%)를 크게 상회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 수출에서 미국의 비율 또한 14.7%로, 2018년(19.2%)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미국이 지난 7년여 동안 중국에 가한 전방위 기술 봉쇄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기술 자립을 가속했다. 중국 국무원이 2015년 발표했던 제조업 발전 전략인 ‘중국 제조 2025’는 다음 달 10주년을 맞는데, 이 중 첨단 기술 자립 정책은 86% 이상 목표를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전 세계 제조업 점유율은 2000년 6%에서 32% 이상으로 늘었고, 중국의 제조업 생산량은 미국·독일·일본·한국·영국의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중국은 미국과 관세 전쟁에서 가장 크게 타격받을 수 있는 에너지·물가·수출 세 핵심 분야에서도 준비를 해왔다. 2020년부터 천연가스 수입과 저장 시설을 대폭 늘리고, 식량 비축량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유지하는 ‘툰훠(囤貨·사재기)’ 전략을 이어왔다. 베이징의 금융권 관계자는 “중국은 작년부터 가속화한 출해(出海·해외시장 진출) 전략에 전속력을 낼 것”이라면서 “과잉 생산된 국내 제품들을 이익 상관 없이 해외에 넘기는 것이 중국의 신(新)생존 전략”이라고 했다.
중국이 미국에 굽히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이 미국을 압박할 카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90%를 장악한 중국은 2023년 이후 최근까지 사실상 미국을 겨냥해 다섯 차례의 광물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의 2~3월 대중국 관세 공격에 대해서는 미국산 농축산물 등에 대해 10~15%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트럼프의 지지 기반을 콕 집어서 반격했다. 미국의 무역 전쟁에 임하는 중국의 대응은 경제 외적 부분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 문화여유부와 교육부는 9일 자국민과 유학생들의 미국 여행과 유학 자제 권고를 내렸고, 상무부는 미국 첨단 기술·방위 기업 제재 명단을 늘렸다. 중국의 외교 라인은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틈을 노려 오랫동안 미국의 핵심 동맹이었던 유럽연합(EU)과 밀착하고 있고, 기존 권위주의 진영의 맹방인 러시아·북한 관계에서도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