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인구 5400명의 소도시인 첼시의 동네 책방 ‘시렌디퍼티(Serendipity) 북스’의 주인 미셸 투플린(53)은 지난 1월 책방을 더 큰 장소로 옮기기로 결심하고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루도 책방 문을 닫지 않고, 파트타임 직원 3명과 함께 9000권이 넘는 책을 새 책방의 서가(書架)로 옮길 것이냐였다.

그의 책방은 ‘반스앤노블’과 같은 대형 서점 체인이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 책방이다. 미국에선 안목 있는 책방 주인이 세밀하게 책을 선정해서 판매하는 독립 서점이 손님들이 너무 많은 책 중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면서 겪는 피로감을 줄여주면서 부활하는 추세다.

13일 시렌디퍼티 책방이 이사가는 날, 주민 300명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9000권이 넘는 책을 새 책방 장소로 옮겼다./AP 연합뉴스

이 도시의 미들 스트리트에서 2017년부터 책방을 운영해 온 투플린은 단골 손님들에게 100여 m 떨어진 메인 스트리트의 새 건물 1층으로 이사 간다는 계획을 알렸다. 그러자 모두들 “내가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투플린이 생각한 방법은 인간 사슬, 인간 컨베이어처럼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늘어서서 새 장소까지 책을 한 권씩 건네 옮기는 것이었다. 그는 이 생각을 포스터와 전단(傳單),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렸다. 그러나 자원자 명단을 따로 받지는 않았다. 이사 당일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는데, 주민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

하지만, 당일에 비라도 내리고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 않으면? 투플린은 피플 잡지 인터뷰에서 “약간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냥 동네 주민들이 우리를 충분히 도울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믿었고 플랜 B는 없었다”고 말했다.

서점 세렌디피티 북스의 지지자들이 지난 13일 미국 미시간주 첼시에서 한 블록 떨어진 새 매장으로 가게를 옮기는 것을 돕기 위해 가게의 책을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고 있다. (버릴 스트롱 제공) AP 연합뉴스

그리고 이사 당일인 일요일 13일 약속 시간인 오후1시를 20,30분 앞두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300여 명이 모여서, 100여m 떨어진 새 서점까지 두 줄로 서야 했다.

안에서 옮길 책들의 순서를 정하며 지휘하던 투플린은 어느 순간에 밖에 나와 보고 건물 모퉁이를 지나서 계속 이어진 주민들의 줄에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장성한 아들의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교사도 줄에 서 있다가 투플린을 만나 서로 깊게 안았다.

투플린은 5,6세부터 91세에 달하는 주민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게 책을 한 권씩 옮기기로 했다. 사람들은 바로 옆에 선 사람을 몰랐지만, 책을 옮기면서 “이 책 좋다” “나는 안 읽은 책인데”라고 얘기를 나눴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투플린은 아마 줄 선 사람들의 60%는 자신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고 피플에 말했다.

책은 장르별로 알파벳 순서대로 옮겨졌고, 결국 새 책방의 서가에 9100권이 완벽히 정리돼 꽂히기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서가가 한 칸씩 채워질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투플린은 “전문 이삿짐 센터를 동원했어도 이렇게 빨리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방 주인 미셸 투플린이 2시간도 채 안 돼 책방 이사를 마친 뒤 도와준 주민들 사이를 지나며 활짝 웃고 있다.

더 놀라운 일은 ‘책 옮기기’ 행사가 다 끝난 뒤 일어났다. 딸이 이 책방 직원으로 일하는 한 엄마가 사람들이 책을 옮기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고, 틱톡에 올렸다.

지금까지 160만명이 봤고, 55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호주ㆍ일본ㆍ스페인에서도 댓글이 달렸고, 사람들은 “이렇게 행복한 스토리를 읽고 싶었다” “이런 걸 해줘서 고마워요. 우리도 바로 이런 게 필요했어요” “당신 덕분에, 인간의 성품을 다시 신뢰할 수 있게 됐어요”라고 썼다.

틱톡으로 시렌디퍼티 서점의 이사 광경이 전세계로 퍼지면서, 이제 투플린은 요가 클래스나 커피숍 등 마을 어디를 가나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 서로 안고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한다. 그는 피플에 “더 이상 책방 얘기가 아니어요. 우리 마을에 대한 얘기이고, 이 일에 조금씩 참여한 우리 모두의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더 커진 책방 공간을 잘 단장해서 저자 초청 행사도 열겠다”며 “물론 우리 고객들의 반려견 이름도 늘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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