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16일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관세 협상을 위해 방미한 일본의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은 장관급 협상으로, 트럼프는 당초 참석할 계획이 없었지만 돌연 아카자와와 면담을 했다. 일본 언론은 이를 ‘난입’이라고 표현했다. 중국과 관세 전쟁 중인 트럼프가 일본 협상에서 빨리 성과를 얻으려는 조바심을 드러냈다는 것이다./트루스소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간 장관급 관세 협상에 돌연 참석했다. 당초 사전 조율이 없었던 트럼프의 등장에 일본 언론은 ‘난입(亂入)’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트럼프는 협상 이후 “큰 진전(Big Progress)!”이라고 했지만,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양국 간 여전히 입장 차이가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3일 전 세계에 관세 전쟁을 선포한 후 미 국채 폭락 등 역풍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보복 관세’까지 주고받는 트럼프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백악관에 온 일본 협상단에 조바심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양진경

트럼프는 이날 미국 협상 대표인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이 배석한 가운데 일본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장관급)과 50분간 비공개 면담을 했다. 이후 베선트 재무장관과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이 각각 이끄는 양국 협상단이 75분간 협상을 진행했다. 트럼프는 장관급 협상에 직접 참석하진 않았지만, 예고에 없던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외교 의전상 파격으로 해석됐다.

트럼프는 협상 당일인 16일 새벽,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일본이 오늘 관세, 군사 지원 비용, 무역의 공정성을 협상하기 위해 (미국에) 온다”며 “나는 재무장관·상무장관과 함께 그 회의에 참석한다”고 썼다. 일본 협상 대표인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워싱턴 DC행 비행기 안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 이시바는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외무성 간부 등과 긴급 회의를 열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대통령의 이례적인 난입”이라며 “조기에 성과를 얻으려는 미국 행정부의 조급함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미국 매도’라는 시장 압박이 트럼프 행정부가 조급함을 드러낸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무차별적 상호 관세 부과를 발표한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이 불확실성이 커진 미국 국채와 채권을 일제히 매도하자, 불안을 느낀 트럼프 대통령이 우선 협상국이자 동맹국인 일본과의 협상이 빠르고 원활하게 진행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미·일은 이날 백악관 관세 협상에서 ‘가능한 한 조기에 합의하여, 양국 정상 간 발표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원칙적 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협상의 가시적 성과는 크지 않았다. 미국은 이미 철강·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일본을 상대로 상호 관세 24%를 발효하기로 한 상태다. 일본은 미국 관세 정책에 거듭 유감을 나타냈고 제외를 요청했다. 미국은 무역 불균형 해소와 주일 미군 방위비 부담 확대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아카자와 면담 이후 소셜미디어에 이날 협상이 ‘큰 진전’이었다고 주장하며 “일본 무역 대표단과 만나서 큰 영광”이라고 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아카자와와 함께 웃으며 찍은 사진도 게시했다. 일본 NHK는 트럼프가 아카자와에게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새겨진 붉은 모자도 선물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트럼프의 ‘환대’의 배경으론 세계 1위 대미 투자국이자 세계 최대 미 국채 보유국인 일본을 트럼프가 마냥 압박만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중국과 ‘관세 보복’을 주고받는 트럼프 입장에선 동맹국 일본을 자기 편으로 확실히 묶어 놔야 한다는 것이다. 아카자와는 “트럼프가 국제 경제에서 미국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며 “트럼프가 ‘일본과의 협의를 최우선한다’고 말했다”고 면담 후 전했다. 그러면서도 “교섭의 향후 진전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협상 결과를 보고받은 이시바 총리는 “앞으로도 쉬운 협의가 되지는 않겠지만, 다음으로 이어가는 협의가 됐다고 평가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직접 협상에 나서는 것은 일본이 미국 무역 전략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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