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급이 낮아도 한참 낮은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와 말씀해 주신 데 대해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미·일 관세 협상의 일본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장관급)은 지난 16일 미국과 협상을 마친 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릇 크기랄까, 따뜻함이랄까, 그런 배려를 정말로 강하게 느꼈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양국 간 장관급 협상에 사전 조율 없이 참석했고, 일본 언론은 이를 ‘난입(亂入)’이라고 표현했다.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의 이런 발언이 일본에서 ‘저자세 협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 내각의 특사 자격인 일본 대표가 트럼프에게 굽신거리느라 대등한 협상을 못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아카자와는 문제의 발언에서 자신을 가리켜 ‘가쿠시타(格下)’라는 표현을 썼다. 지위·신분·권력 등이 한 단계 아래인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다. 자신이 트럼프보다 아랫사람이라는 뉘앙스도 없지 않다. 아카자와는 “(트럼프의 행동은) 급이 낮은 사람(가쿠시타)과 만나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며 “일본과 협상을 최우선으로 해주려는 모양이라고 진심으로 체감했다”고도 했다. 자신을 직접 만나 준 미국 대통령에게 감동했다는 듯 수차례 ‘가쿠시타’를 언급하는 모습이 TV로 일본 국민에게 전달됐다.
하시모토 고노 요미우리신문 특별편집위원은 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런 바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라며 “당신(아카자와)은 일본 정부를 대표하고 있다. 이런 태도부터 고치지 않고선 제대로 (협상에) 대응할 수 없다”고 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오구시 히로시 대표대행은 “굽신거리는 자세로 협상한 게 엿보인다”며 “미국은 일·미 무역협정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해 관세를 부과했다. 일본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당당한 자세로 협상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이 애초에 일본을 첫 협상 상대로 정한 게 ‘상대하기 쉬운 나라’이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사하시 료 도쿄대 교수는 아사히신문 기고에서 “이번 협상에서 명확해진 대목은 미국이 빠르게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동맹국 중에서도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나라를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사하시 교수는 “미국이 주일 미군 주둔 비용 증액 요구에 그치지 않고, 대(對)중국 공동 관세 부과나 미 국채 추가 매입 같은 이례적 요구를 해 올 가능성도 있다”며 “1980년대 후반 일·미 무역 마찰 때보다 큰 시련의 시기”라고 했다.
☞가쿠시타(格下)
지위·신분·권력·능력 등이 한 단계 떨어지는 인물이나 그런 일을 지칭한다. 반댓말은 가쿠우에(格上)다. 맥락에 따라선 윗사람, 아랫사람과 같은 뉘앙스도 포함하고 있다. 스포츠에서도 자주 쓰이는데, ‘가쿠시타 팀에게 패배하는 이변이 벌어졌다’와 같은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