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가 된 할리우드 영화 ‘콘클라베’는 전 과정이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는 교황 선출 투표를 소재로 삼았다. 투표권자인 동시에 후보자인 80세 미만 추기경단이 14억 가톨릭 신자의 영적 지도자를 뽑는 과정에 각종 권모술수와 정치적 음모가 판을 치고, 고귀함 이면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도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기까지 충격적인 반전이 거듭된다. 가상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 과거 콘클라베 역사를 보면 권력 다툼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콘클라베를 두고 ‘페이펄 폴리틱스(Papal politics·교황권의 정치학)’ ‘미국 대통령 선거 뺨치는 정치 이벤트’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콘클라베가 ‘밀실의 암투(暗鬪)’처럼 그려지는 건 추기경들이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된 상태에서 투표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콘클라베는 게다가 서로의 본심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후보 명단도 없이, 교황이 되기 위해 필요한 표가 한 추기경에게 모이기까지 무한 투표를 하기 때문에 엄청난 ‘경우의 수’가 가능하다. 물리학자들이 극도의 혼돈 상태에 대한 ‘카오스(chaos·혼돈) 이론’을 설명할 때 콘클라베를 종종 사례로 들 정도다.
추기경들이 모두 하느님을 위해 한마음으로 일하는 사제이지만 인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콘클라베가 일단 시작되면 대륙별로 뭉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압도적으로 수가 많은 유럽 추기경들이 ‘대세’를 형성하는 가운데 나머지 대륙의 추기경들이 어떻게 모이고 흩어지는지가 결과를 정하게 된다. 이번 콘클라베의 경우 투표를 할 130여 명 추기경 중 50여 명이 유럽 출신으로 알려졌다. 콘클라베는 3분의 2를 득표해야 선출되기 때문에 이번 콘클라베에선 86표 넘게 받아야 한다. 유럽 추기경들의 지지가 없으면 선출이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지난 수십 년간 치러진 콘클라베에선 비(非)유럽 추기경들의 표가 뭉칠지, 혹은 유럽이 아시아·아프리카 등 몇몇 다른 대륙 추기경들의 표를 포섭할지가 관건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치열한 물밑 선거전이 펼쳐지고 때때로 배신과 음모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3분의 2를 득표해야 한다’는 콘클라베 규정 자체가 추기경 수가 많은 유럽에 유리하다는 지적도 때때로 나온다. 남미·아시아·아프리카 등 다양한 대륙을 순방하며 현지 문화를 존중했던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 교황은 자신이 선종한 후 치러질 콘클라베의 선출 조건을 ‘2분의 1 이상 득표’로 바꿨는데, 이를 두고 비유럽 교황 선출을 내심 지지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콘클라베에서 독일 출신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됐고 그는 ‘3분의 2 이상’으로 다시 룰을 바꿨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퇴위한 후 치러진 콘클라베에선 유럽을 비롯한 다른 대륙의 표를 두루 얻은 첫 남미(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됐다.
콘클라베의 결과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의 후임자를 뽑는 콘클라베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폴란드의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요한 바오로 2세)이 선출됐다. 그는 젊은 나이(당시 58세)와 456년 만에 선출된 비(非)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인 교황으로 주목받았다. 그가 파격적으로 선출된 배경엔 냉전 시대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미국이 개입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는 추기경 시절 반공(反共) 성향을 보였고, 폴란드계 미국인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알려졌다. 교황 즉위 후 활발한 대외 활동이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 정권 연쇄 붕괴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정치판뿐 아니라 가톨릭 내에서도 보수파와 진보파가 존재하고 서로 경쟁한다. 최근 들어선 천주교가 금기시한 동성애나 여성 사제 등을 지지하는 등 가톨릭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면 진보파, 반대면 보수파로 분류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2년간 동성애자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허용하거나 성직자의 독신 의무를 완화하는 등 교단에 개혁을 단행한 진보파다. 이 때문에 이번 콘클라베에선 교황 자리를 되찾으려는 보수파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이어가려는 진보파 추기경 간 권력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단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130여 명의 추기경 중 약 85%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임한 만큼 보수파의 도전이 쉽지는 않으리라는 전망도 많다. 반면 철저한 비밀투표로 진행되는 콘클라베의 특성상 어떤 이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임 베네딕토 교황과는 대척점에 있었지만 콘클라베를 통해 선출됐다.
최근 콘클라베는 한 주 내에 결과가 나오지만 과거엔 수 개월, 때로는 수 년에 걸쳐 투표가 반복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1241년 즉위한 첼레스티노 4세 교황은 두 달간 진행된 콘클라베에서 선출됐다. 냉·난방 시설이 변변치 못했던 당시 사실상의 감금 생활 끝에 추기경 한 명이 건강 악화로 사망했고, 첼레스티노 4세 역시 선출 17일 만에 선종했다. 그레고리오 10세가 선출된 콘클라베는 1268년부터 2년 9개월 동안 열렸다. 결과를 기다리다 지친 로마 시민들이 항의의 의미로 콘클라베가 열리는 궁궐의 지붕을 뜯고 공급되는 음식의 양을 줄였다고 전한다.
과거 교황과 황제의 갈등 때문에 추기경들을 보호하기 위해 격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도 있다. 교황과 대립했던 13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 선출을 막기 위해 콘클라베 선거인인 추기경 두 명을 포로로 잡기도 했다. 추기경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자 교황청은 문을 걸어 잠그고 선거를 진행하도록 법제화했다.
☞콘클라베
‘열쇠로 잠글 수 있는 방’을 뜻하는 라틴어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리는 교황 선거를 말한다. 80세 미만 추기경 전원이 후보이자 유권자가 돼 3분의 2 이상 찬성이 나올 때까지 투표를 반복한다. 일체의 과정은 비밀에 부쳐진다. 교황이 선출되면 성당 굴뚝에 흰 연기를, 선출이 무산되면 검은 연기를 피워 결과를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