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알려진 뒤 기도회가 열린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은 교황을 애도하려는 신자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교황은 선종 전날 이곳에서 대중에게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23일부터 관에 안치된 교황에 대한 조문이 시작되고 장례미사는 26일 엄수된다. 이 기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교황을 조문하러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면서 치안에 비상이 걸렸다고 이탈리아 언론들은 전했다./AFP 연합뉴스

“어제 여기에서 교황의 모습을 뵈었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이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善終)한 지 12시간 만인 21일 오후 7시 30분(현지 시각),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교황 추모 묵주기도회엔 성직자와 신도 수천 명이 참여했다. 황혼을 배경으로 나부끼는 조기(弔旗) 아래 손에 촛불을 들거나 교황의 사진을 품에 안은 이들이 눈에 띄었다. 현장의 스피커에서 묵주기도(가톨릭의 대표적인 기도문)의 첫 구절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이 흘러나오자 교황을 배웅하는 듯한 기도 소리가 바티칸의 광장을 가득 메웠다.

성 베드로 광장에선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직전까지도 교황의 쾌유를 비는 묵주기도회가 열렸다. 같은 기도문에 며칠 전까지는 교황의 건강을 기원하는 희망이, 이제는 교황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애도가 담겼다. 많은 이가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필리핀에서 온 루르드(35)씨는 “2015년 교황이 마닐라에 오셨을 때 뵌 이후 10년 만에 희년(가톨릭의 성스러운 해)을 맞아 어렵게 바티칸에 왔다. 이 여행이 교황을 떠나보내는 여행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각) 바티칸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생전 교황이 거주했던 ‘성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 안치된 교황의 시신 곁에서 기도하는 모습./AP 연합뉴스

프랑스에서 온 순례자 클레망스(55)씨는 “어제 바로 이 자리에서 발코니에 나온 교황, 차를 타고 손을 흔드는 교황을 보고 ‘교황 만세’를 외쳤다. 하루 만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종 하루 전인 부활절도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신자들을 만났다.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왔다는 40대 미겔씨는 작은 아르헨티나 국기를 펼쳐 보이며 “그는 우리의 자랑이자 희망이었다”고 했다.

기도회가 끝난 뒤 광장엔 추도객과 순례자들이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불미스러운 사고에 대비해 총으로 무장한 경찰 수십 명이 광장 주변에서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그들 뒤로 전 세계에서 몰려온 100여 매체가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폴란드 방송 TVP 기자는 “선종 소식을 듣자마자 날아왔다”며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때 못지않은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했다.

교황은 선종한 21일 오전 6시 교황청 내 ‘산타 마르타의 집’ 3층에 있는 자신의 침실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처음엔 별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7시쯤 되자 교황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가 전했다. 정확히 어떤 증세를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긴급 호출된 의료진이 30여 분간 응급처치를 했지만 이미 상태를 되돌릴 수 없었다.

생전 머물던 곳에서… 유언대로 간소한 입관식 -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관이 22일 생전 거처였던 바티칸 내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 놓여 있다. 교황의 시신은 23일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이동해 조문객들을 맞이한다. 26일 장례 미사가 끝나면 교황의 시신은 생전 유언장에서 안치 장소로 지목한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옮겨진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오후 8시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서 입관식이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고 흰색 주교 모자를 쓴 채 아연을 덧댄 간소한 목관에 누웠다. 손에는 묵주가 쥐여졌다. 이전 교황들처럼 삼나무관과 아연관, 참나무관을 삼중으로 쓰지 않았다. 그는 ‘장례는 간소해야 한다’는 자신의 뜻을 반영해 지난해 11월 교황 장례 예식서를 개정해 두었다.

교황청이 교황의 사인을 ‘뇌졸중에 따른 심부전’이라고 공식 발표한 가운데, 코리에레델라세라는 고령인 교황이 부활절을 앞두고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다 피로가 쌓이고, 고혈압이 심해지면서 뇌졸중이 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교황이 마지막 ‘삶의 불꽃’을 태웠다는 말도 나왔다. AFP는 교황청 소식통을 인용해 “교황이 세상과 단절된 채 병원에서 죽기보다 (바티칸으로) 돌아와 축복하며 부활절을 맞기를 원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2월 5주 넘게 입원하며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교황에게 의료진은 최소 두 달간의 요양을 강력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황은 바티칸 방문객들과의 깜짝 만남, 교도소 방문, 부활절 강복 메시지 발표 등 일정을 계속했다.

교황청은 교황의 장례 미사가 26일 오전 10시에 열린다고 22일 발표했다. 로마시는 앞으로 수일간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조문 및 장례식 참석을 위해 몰려올 것으로 예상하고 긴장하고 있다. 로마 시청은 이날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당시 300만명이 바티칸에 몰렸다. 이번에도 250만명 이상이 찾을 경우에 대비해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연장 운행하고 상시 구급소 등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처 숙소를 구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텐트촌’ 마련도 검토 중이다.

로마의 관문 피우미치노 공항은 이미 북새통이었다. 내리는 비행기마다 만원이었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바쁜 발길이 줄을 이었다. 공항 버스 정류장에는 100여m의 긴 줄이 섰다. 바티칸 근처 숙소는 선종 발표 직후 순식간에 동났다. 평소 하룻밤 150유로(약 24만원) 남짓하던 호텔 숙박비가 모두 300유로(약 48만원) 이상으로 뛰었다. 바티칸에서 도보 10여 분 거리의 ‘호텔 알란테’는 “이달 말까지 전 객실이 모두 예약됐다”고 했다.

뉴욕 증권거래소도 묵념 -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진 21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직원이 묵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각국 지도자들의 애도는 이날도 이어졌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위대한 목자였던 교황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교황은 언제나 가장 약한 이들의 편에 섰던, 겸손한 인물이었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5일,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와 이웃 국가 브라질은 7일 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아내) 멜라니아와 함께 교황의 장례식에 가겠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마크롱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등도 26일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등, 임민균 신부 등 세 명이 공식 조문단으로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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