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반 조문이 25일 저녁 끝을 맺고 오후 8시 관 봉인 예식을 치렀다. 교황의 시신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운구된 21일 오전부터 이날까지 조의를 표한 사람은 25만명에 달했다고 교황청은 밝혔다.
교황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려는 신자와 일반인의 발길은 사흘 내내 밤낮없이 이어졌다. 교황청은 조문 첫날 10만여 명의 인파가 몰리자 조문 시간을 자정에서 이튿날 새벽 5시 30분까지로 연장해 밤새 조문객을 받았다. 일반 조문 사흘째이자 마지막 날인 이날도 교황청은 새벽 시간 잠깐 문을 닫았을 뿐 계속 일반인의 조문을 받았다.
25일 저녁 마지막 조문에는 특별한 이들이 교황을 조문했다. 그의 할머니 고향인 이탈리아 북부 아스티에서 찾아온 교황의 사촌들, 또 방글라데시에서 빈민들을 위한 소액 대출 운동을 통해 교황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노벨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 그리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가 직접 성 베드로 대성당을 찾아와 교황의 시신에 참배했다.
조문 종료 후 시작된 ‘관 봉인 예식’은 입관식 때와 마찬가지로 교황청 궁무처장 케빈 패럴 추기경의 주례 하에 열렸다. 교황의 얼굴에 흰 천이 덮였고,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 등이 , 교황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이 들어갔다.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도 철제 원통에 봉인돼 관에 넣었다.
관은 금속 뚜껑으로 단단히 덮였다. 검은 예복과 검은 넥타이를 착용한 기술자들이 나와 십자가와 교황 문장, 이름과 생몰 연도, 재위 기간이 새겨진 금속판을 얹은 뒤 용접 작업을 했다. 이후 재무관, 교황 가정국, 전례국, 바티칸 참사회 명의로 관 봉인 작업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관과 같은 소재의 목재 뚜껑이 다시 덮였다.
봉인 예식을 마친 교황의 관은 26일 오전 10시 장례 미사를 위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야외 제단으로 운구된다. 장례식 이후에는 교황이 마지막 안식처로 택한 로마 시내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성모 대성전)으로 옮겨진다. 교황이 바티칸 외부에 묻히는 것은 1903년 로마 시내의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 안치된 레오 13세 이후 122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