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메르츠 차기 총리가 이끌 독일의 새 정부에서 기업인 출신이 요직에 배치됐다. 지난 2월 총선에서 승리해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과 자매 정당 기독사회당 연합(기민·기사 연합)은 28일 각자 몫으로 배분된 장관 명단을 발표했는데 기업인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이면서도 경기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독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총리 취임을 앞둔 메르츠 기민당 대표가 기업인을 적극 발탁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기민당 소속 각료로는 우선 경제·에너지부 장관에 카테리나 라이헤 베스트에네르기 최고경영자(CEO)가 눈길을 끈다. 베스트에네르기는 유럽 최대 에너지 기업 중 하나인 에온(EON)의 자회사이다. 그는 독일의 자동차 부품 제조 업체인 섀플러와 스웨덴의 에너지 회사 잉그리드 캐퍼시티에서도 경영진으로 참여했다. 1998년부터 2015년까지 연방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기민당 내 대표적인 에너지통으로 분류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라이헤의 임명은 메르츠의 경제정책에서 에너지가 핵심이 될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신설된 디지털·국가현대화부 장관에는 카르스텐 빌트베르거 세코노미 CEO가 임명됐다. 세코노미는 유럽 전역에 1000여 곳의 전자제품 매장들을 운영하는 회사다. 빌트베르거는 그동안 기민당에 디지털 정책을 조언해 온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입각과 함께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관행들을 바꾸고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는 임무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사령탑이자 내각의 실세인 부총리 겸 재무장관직은 정해지지 않았다. 기민·기사연합과 연정 협상 중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총선 전까지 집권 여당이었던 사민당은 연정 참여 여부를 35만7000명 전체 당원 투표에 부쳤다. 29일 끝나는 투표 결과에 따라 연정 합류 여부와 내각 명단을 최종 확정한다. 연정 참여가 확정될 경우 부총리 겸 재무장관에 라르스 클링바일 당 공동대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외교 사령탑인 외무장관에는 요한 바데풀 기민·기사 연합 원내부대표가 낙점됐다.
독일에서는 사민당과 중도좌파 녹색당, 중도우파 자유민주당이 구성한 연정이 구성 정당간 갈등 격화로 붕괴됐고, 지난 2월 치른 조기 총선에서 기민·기사 연합이 승리했다. 그러나 득표율이 과반에 한참 못 미치는 28.5%에 그쳐 연정 협상이 진행돼왔다. 다음 달 6일 메르츠가 총리로 공식 임명되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각료들을 임명하면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하고 사민당 소속 올라프 숄츠 현 총리는 물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