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정오 일본 도쿄의 대형 서점 기노쿠니야 신주쿠 본점. ‘명당’으로 꼽히는 입구 정면 ‘라이트 에세이’ 서가를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알록달록 수놓고 있었다. ‘BTS 리더 RM의 추천’ ‘블랙핑크 지수가 사랑하는 책’ 같은 홍보 문구가 빼곡히 붙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김수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황선우)’ 등 작품을 유심히 살피던 20대 여성 직장인이 손힘찬 작가의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를 집어들었다. 그는 “사회인이 된 지 만 2년이 되는데, 사는 게 점점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며 “주변에서 한국 에세이를 꼭 읽어보라고 추천했다”고 말했다.
한국 에세이 등 베스트셀러가 일본에서 잇따라 높은 판매고를 올리면서 서점 풍경을 바꾸고 있다. 과거 ‘한국 책’이라고 하면 자극적인 혐오 발언으로 도배된 혐한(嫌韓) 서적을 말했지만, 최근에는 한국 에세이와 소설 등 베스트셀러가 대형 서점의 진열대 최전선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10일 “최근 한국 에세이가 출판만 하면 증쇄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며 “한국 문화에 관심이 없는 층에서도 인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내 한국 에세이 붐은 2019년 BTS 멤버가 추천한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가 불을 지폈다. 출판사 다이아몬드가 출시한 이 책은 지난 1월까지 일본에서 총 50만 부가 팔렸다. 한국 에세이의 가능성을 확인한 다이아몬드사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다’ 등 에세이를 잇달아 번역해 선보였고, 9만~17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한국 에세이 담당 편집자 하타시타 유키는 “일본 출판계에선 책을 4~5권 내면 이 중 1권을 증쇄하는 게 평균이고, 5만부 넘게 팔리는 건 극히 일부”라며 “(한국 에세이에서) 연달아 10만부 넘는 히트작이 나오면서 일본 출판업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했다. 이후 다른 출판사들이 한국책 번역 출판에 뛰어들면서, 몇 년 만에 대형 서점의 외국 문학, 에세이, 베스트셀러 서가마다 한국 책 코너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에세이의 인기는 피곤한 삶에 지친 일본 여성 독자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바다 건너 20~30대 젊은 작가들이 건넨 위로 메시지에 공감하며 확산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일러스트와 짧은 텍스트를 함께 배치한 감각적인 편집도 한몫했다고 한다.
국내 도서의 일본 수출을 담당하는 출판 에이전시 관계자는 “일본 출판사의 관심이 아이돌 추천서에서 책의 메시지나 일러스트 등 콘텐츠 자체로 옮겨가고 있다”며 “일본에 소개되는 한국 도서 콘텐츠가 다양한 장르로 확장하며 인정받는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