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17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끝냈다. 일본은행은 이틀간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연 -0.1%였던 기준금리를 0~0.1%로 인상하기로 했다고 19일 발표했다. 일본은행이 일본 경제의 고질적 문제였던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 하락)이 끝났다고 보고 그동안 진행해 온 거액 풀기 속도를 조절하기에 나선 것이다.

“일본은행 윤전기로 돈을 무제한 찍겠다”는 말이 상징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 부양책인 ‘아베노믹스’가 이로써 긴 고전(苦戰) 끝에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금리 결정 후 “일본은 현재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 소비자물가(신선 식품 제외)는 3.1% 상승하며 일본은행의 목표치(상당 기간 2%)를 뛰어넘었다.

일본은행은 동일본 대지진(2011년) 이후 침체한 경기를 살리고자 2013년 시작한 아베노믹스의 하나로 그해 기준금리를 제로(0%)로 낮춘 데 이어 2016년 2월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라는 특단 조치를 시행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연합뉴스

마이너스 금리는 시중은행이 일본은행에 맡기는 자금 일부에 오히려 비용을 물림으로써 은행들이 가계·기업에 돈을 싼 금리에 더 빌려주도록 유도하는 부양책이다.

19일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마이너스 금리 해제’라는 제목으로 호외를 냈다. 검은색 정장에 마스크를 낀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이날 일본은행 본점에 들어서는 사진을 전면에 싣고 “일본은행의 대규모 완화 정책이 큰 전환점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그만큼 이날 정책 변화가 일본에는 큰 전환점이라는 뜻이다.

그래픽=김성규

디플레이션을 탈피했다고 판단한 일본은행은 이날 금리 인상과 함께 다른 돈 풀기 정책도 종료했다. 10년 전 증시 부양을 목표로 시작한 상장지수펀드(ETF)·부동산투자신탁(REIT) 신규 매입을 끝내기로 했고, 장기(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고정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는 이른바 YCC(수익률 곡선 통제) 정책도 중단한다고 결정했다. 시라이 사유리 게이오대 교수는 닛케이에 “예상보다 큰 정책 변화다. 이제 남은 것은 일본은행이 전망하는 대로 물가 상승률 2%가 2025년까지 유지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가가 0% 안팎에서 꿈쩍도 않는 고질적 저물가는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 후 닥친 일본 경제의 최대 적(敵)이었다. 닛케이는 지난 20년 상황에 대해 “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물가는 안 올랐다. 일본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소비세를 올렸을 때(세금이 가격에 반영되는 경우)와 같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줄곧 2% 미만이었고 때론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꿈쩍도 하지 않던 물가는, 코로나 부양책으로 막대한 돈이 풀린 가운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에너지 가격 등이 급등하면서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140~150엔까지 오르며(엔화 가치 하락) 해외 원자재의 엔화 기준 수입 가격이 더 오른 탓에 일본 기업들이 상품 가격을 앞다퉈 올리며 물가도 올랐다. 일본은행은 올해도 2%대 물가 상승을 예상하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일본의 임금이 상승세라는 점도 디플레이션 탈피에 긍정적 요인이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이달 초 일본 주요 대기업의 올해 평균 임금 인상률이 5.3%라고 집계·발표했다. 물가 인상에 이어 임금이 따라 오르고, 이에 따라 소비가 늘며 물가가 올라가는 선순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 탈피와 함께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막대한 돈 풀기를 통해 디플레이션 극복에 일조했고 일본 증시를 끌어올렸다는 긍정적 성과를 냈다. 하지만 막대한 돈을 찍어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1255조엔(약 1경902조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국가 채무라는 ‘짐’을 남겼다. 초저금리와 이에 따른 엔저(低)에 힘입어 기업 실적이 개선되며 주가가 올랐음에도 내수가 그만큼 살아나지 않아 경제성장률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디플레이션 탈피가 일본 경제의 자력(自力)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코로나 이후 세계를 휩쓴 인플레이션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는 점도 마이너스 금리 종식을 아베노믹스의 성과로 자축하기 어려운 이유다.

일본은행은 19일 올해 경제성장률을 1.2%로 전망했다. 지난해(1.6%)보다 내려간다고 예상했다. 아울러 ‘디플레이션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지도 않았다. 이처럼 경제가 완전히 살아났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일본은행은 급격한 금리 인상은 없다고 이날 선을 그었다. 일본 언론들은 아직은 사실상 ‘제로 금리’인 일본의 정책 금리가 올해 0.25%, 내년 0.5% 정도 완만하게 올라간다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처럼 단숨에 한 해 5%를 올리는 일은 일본에선 없다고 전망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도 도쿄 증시의 닛케이평균은 이날 전날보다 0.7% 상승해 40003에 거래를 마쳐 9거래일 만에 4만 선을 다시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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