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5

지난 11일 인도네시아 대통령궁을 방문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로이터 연합뉴스

“총리, 부디 결론부터 말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요.”(나가쓰마 아키라 일본 입헌민주당 대표대행, 지난달 10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게)

지난해 10월 높은 국민 지지율을 등에 업고 총리직에 올랐으나, 최근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번엔 특유의 화법(話法)을 놓고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최근 일본 야권뿐 아닌 젊은 층들이 사용하는 현지 소셜미디어에선 그의 화법을 이른바 ‘이시바 구문(構文)’이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분위기가 확산 중입니다.

지난달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야당 의원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마이니치신문 디지털

논란은 지난달 2025년도 일본 정부 예산안을 검토하기 위해 열린 국회 예산위원회에서 비롯됐는데요. 당시 국회에 출석한 이시바를 향해 야당 의원들은 예산안과 다소 무관한 현안들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여기서 이시바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서도, 말을 불필요하게 끌며 시간을 낭비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예컨대 지난달 11일, 제1야당 입헌민주당 의원의 ‘내년 3월 핵무기금지조약 체결국 회의 참가 여부를 언제 정할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철저히 관찰하려 한다. 그저 핑계로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언제까지 정한다고 하는 기한은 검토가 진척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같은 달 17일 입헌민주당 의원이 ‘동성혼 합법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땐 “(동성혼 합법화)의 근거는 과연 행복 추구권일까요. 헌법이라는 교과서를 다시 읽어봐야만 하는 일이겠지만, 당사자들에겐 둘도 없는 가치겠지요. 법적 (혼인) 관계라는 복잡한 이야길 제쳐놓고라도 (동성혼 합법화가) 일본 전체 행복도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고 했습니다. 모두 원론적인 얘기가 길고, 정작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알맹이’는 빠졌다는 지적이 나왔죠.

최근 일본 한 네티즌이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특유의 화법을 따라해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시글. "취업 계속 지원 A형, 그것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장애를 가진 분들이 사회에서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정말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라고 적혀 있다./쓰레드

이러한 이시바의 답변을 두고 일본 네티즌들은 ‘어려운 말만 잔뜩 늘어놓고 정작 필요한 답은 하지 않는다’며 놀림거리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야당 의원들도 이후 열린 예산위 회의에서 이시바에게 “’이시바 구문’을 듣고 싶지는 않다”며, 보다 짧고 명확한 답변을 거듭 요구했죠.

이시바도 자신의 말투를 둘러싼 논란을 인식한 듯, 지난달 19일 경제인들과의 회담에서 “요새 많이 혼나고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화법은 가급적 삼가고 처음부터 결론을 말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총리라는 자리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네요. 난 그저 아직 중의원 의원 이시바입니다”라며 자조하기도 했습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27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중의원 총선 당선자 명단에 장미꽃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연합뉴스

일각에선 이시바가 현재 소수 여당 상태인 자민당을 이끄는 입장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문을 단칼에 쳐내기보다 포용적 태도로 협력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일 거란 평가도 나옵니다. 실제로 그는 지난 10일 일본 주간 다이아몬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알기 쉽게 말하기 위해 앞으로도 갈 길이 멀지만, 정교한 논의를 건너뛰고 결론만 요구하는 것 역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 쉽게 말해버리면 (발언의) 정당성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지나치게 긴 그의 답변에 야권뿐 아닌 국민들은 이미 지친 기색이 더 역력해 보입니다. 이시바 구문 논란 이후인 지난달 20~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은 전달보다 5%포인트 떨어진 41%였습니다. 닛테레뉴스는 지난 5일 “이제 ‘(총리직이) 낯설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보다 구체적인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시기”라고 이시바를 전면으로 비판했죠.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courrier.jp

일본 유력 정치인의 화법이 구설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과거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평소 논점에 어긋난 답변을 자주 한다며, 이른바 ‘고항(ご飯·밥) 논법’이라는 조롱을 들었습니다. 고항 논법이란, 식사로 밥 대신 빵을 먹은 사람이 ‘밥 먹었느냐’는 질문에 “안 먹었다”고 답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역시 과거 재임 시절 “기후변화 문제는 펀하고(즐겁게) 쿨하고(멋지게)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엉뚱한 발언을 거듭하면서 네티즌들에 의해 ‘신지로 구문’이란 놀림을 받았습니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70~71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일본을 웃기고 울린 2024 뉴스 톱 텐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12/25/YAASNU2UDZDUPFNRTTFHYKO2QQ/

日 여행 다녀왔나요? 지갑에 350만원이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5/01/08/GE2DNKB4PBCATMV5TBNHXI4APU/


‘방구석 도쿄통신’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하단의 ‘구독’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메일 주소로 ‘총알 배송’됩니다.

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5